자가격리 식사일기, 4일차 - 잘 먹는 즐거움

코로나는 해병대와 달라서, 한 번 음성이라고 영원한 음성인 것은 아니다. 음성 판정을 받았더라도 자가격리 중에 언제 증상이 나타나 양성으로 돌아설지 모른다. 그말인즉 자가격리는 생각만치 마냥 맘 편한 일은 아니란 것이다. 아주 작은 기침과 컨디션 난조에도 금방 예민해진다. 잠들기전엔 혹시나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때 목이 아플까 두렵다.

예민한 자가격리 생활 중에 그나마 즐거움을 찾으라면 결국 식(食)이다. 잘 먹어야 면역력을 유지하니 자가격리 중 먹기란 즐거움과 예방을 동시에 실현하는 길이다. 뭐.. 아무튼 그래서 하려고 했던 말은 오늘도 하루종일 잘 먹었다는 이야기. 

 

오늘 아점은 어제 재워둔 아지타마고로 때웠다. 잘 됐을라나 모르겠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계란을 갈라봤다.

 

하나는 반숙치고 너무 익었고 다른 하나는 딱 알맞게 익었다. 어쨌거나 짭조름한 것이 밥 반찬으로는 그만이다. 달걀 두알에 밥 한 공기를 몽땅해치웠다. 다만 밥이 없으면 너무 짜서 못 먹는 것이 문제점.

 

쬐끔 돌리다 사진 찍는거 깜빡해서 다시 꺼냄

점심과 저녁 사이에 간식으로 삼겹살을 조리했다. 냉동고에 들어있던걸 어제부터 녹였다. 에어프라이어에 바짝 돌려 구워낼 예정.

200도 10분, 뒤집어서 180도 10분, 자른 후 다시 180도로 5분 돌렸다. 

 

에어프라이어로 삼겹살을 구우면 기름도 안 튀고 냄새도 안 나고 참 좋지만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단점이다. 만두 시식을 통해 그 대기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았다.

 

엊그제 주문한 비비고 교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두 배 큰 사이즈의 만두가 왔는데, 맛이 두 배 더 있지는 않고 그냥 일반 비비고 교자만큼 맛있다. 대신 배는 두 배로 부르다. 

 

삼겹살 조리끝. 원래 에어프라이어 삼겹살의 최고 장점은 기름이 쏙 빠져 깔끔하다는 것. 그러나 설거지 최소화를 위해 종이호일을 깔고 구웠더니 기름이 쏙 빠진 삼겹살을 만날 수는 없었다. 삼겹살에서 탈주한 기름들이 종이호일에 고여 오히려 기름에 절인 삼겹살을 만들어 버렸다. 종이호일로 기름을 한번 쪽 빼주는 과정을 추가로 거쳐야 했다.

 

생각해보니 밥을 먹은지 얼마 안돼서 밥을 다시 또 먹기는 뭐하다는 판단 하에 그냥 삼겹살만 먹었다. 뜻밖의 저탄고지.

 

삼겹살 굽기 퀘스트 보상: 맥주 200ml

생활 정보: 캔맥주 종이컵에 따라 마시면 거품 많고, 코팅 내 올라오고 아무튼 겁나 맛없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는 커피를 타 마셨는데 아까 사진 찍는 것을 깜빡해버렸던 것. 거의 다 마신 후 찍었다.

 

저녁으로 무얼 먹을지 궁리하고 있는데 동행자가 집 앞에 빵 선물을 놓고 갔다. 크으.. 감동 그 자체.

 

노티드의 도넛 3종과 아우어 베이커리의 빵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빵집들인데 우리 집에서는 배달이 안된다. 그걸 알고 손수 비대면 배달을 해주었던 것. 가족들이 하나 씩 집어갈 수 있도록 식탁에 펼쳐놨다.

 

감사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선택한 메뉴는 로스트비프샌드위치와 노티드의 클래식 도넛. 둘 다 맛이 기가 막히다. 여기까지 직접 배달해준 동행자의 마음을 생각하며 먹으니 더더욱 맛이 좋다. 음식은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먹는 것... 무한한 감사...

 

샌드위치부터 먹어치우고 도넛을 먹었다. 크림의 부드럽고 간질간질한 단맛이 특히 매력적이다. 

 

감바스 파스타. 와인이 필요하다는 아빠의 요청에 따라 파스타를 주문했다.

여기서 잠깐, 와인이 필요한데 파스타는 왜 주문했느냐? 한국에서 전통주를 제외한 주류는 일반 통신판매가 불가하기 때문에, 음식 배달을 통해서만 주문할 수 있다—픽업 방식의 '스마트 오더'는 가능하다. 그마저도 올 7월 법이 개정되어 주류가격이 음식가격을 넘지 않는 선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배달 판매도 되고 전통주 주문도 가능한데 나머지 주류는 통신판매가 불가하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다. 저녁 및 안주로 먹을 겸 파스타도 주문한 것.

 

만이천원짜리 비냐 란자 틴토. 품종은 템프라니요. 뭘 알아서 주문한 건 아니고 선택지 중에 가장 저렴했다.

 

와인 한 잔 따르고 파스타 접시에 조금 덜어 방으로 들고 왔다. 감바스 파스타는 예상가능한 바로 그 맛으로, 생각보다 괜찮았다. 안주와 궁합을 논외로 하면, 와인은 부드럽고 기분좋은 단맛이 있고 뒷맛의 여운이 은은하게 남아 나쁘지 않았다. 대강 되는대로 주문한 것인데 꽤나 만족스러웠다. 자가격리하면서까지 까탈스럽게 굴 필요는 없다. 지금은 무조건 잘 먹고 버티는 게 장땡이다.

 

다 먹고 나서 간식으로는 아우어베이커리의 빨미까레를 꺼내들었다. 

 

장갑끼고 삼등분하여 한 쪽을 가져온 것. 달달해서 먹고 나니 기분이 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