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식사일기, 9일차 - 인간은 적응의 동물

벌써 자가격리도 9일차를 넘어가고 있다. 몸 컨디션도 좋고, 수염도 마음껏 기르고 있고—물론 누가 못기르게 한적은 없지만—, 집에서 시간 때우는 일에도 능수능란해져 이젠 전혀 어려움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 뉴-노말에 벌써 적응해버린 것일까. 격리 이후에도 집콕 생활이 계속 될 것을 생각하면 이른 적응도 나쁘지 않긴하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어 뉴-뉴노말에 적응할 날이 있기를.

 

오늘은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일어났다. 그래서 오늘 커피는 매우 진하게 탔는데, 그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심장이 벌렁거려 죽는 줄 알았다. 요즘들어 카페인 안 먹어버릇하니 약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아침식사는 어제 피자집 사이드 메뉴로 주문했던 팝콘치킨 남은 것과 식빵 남은 것으로 해결했다. 이상하게 조식은 항상 전날 먹고 남은 걸 짬처리하게 되는 듯하다. 

 

일찍 일어나선지, 아침이 부실했는지 점심시간 한참 전부터 배가 고팠는데, 밥 먹기가 귀찮아 참고 있다가 오후 네시 넘어서야 먹었다. 메뉴는 며칠 전 쿠팡으로 주문했던 갈비탕.

 

한 번 푹 끓인 후 깊이 있는 그릇에 담아냈다. 

 

레토르트 갈비탕치고 나쁘지 않은 맛. 뼈에 붙은 고기가 질기긴 하지만 국물이 괜찮고 고기 양도 이정도면 1인분으로 충분해 간편하기 먹기에는 전혀 아쉬움이 없다. 

 

메가촉

먹고 나서는 가볍게 간식타임을 갖는다. B마트에서 어제 주문했던 알루이 사의 메가촉. 저렴하고 양 많아보여서 한번 시도해본 것이다.

 

딱 가격만치의 맛. 하나까지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두 개부터 급격하게 물린다. 안에 있는 초코크림은 먹을만한데 비스킷이 너무 싸구려인 것이 아쉽다. 

 

이후에는 영화 타임을 가질 차례. 자가격리 동안 철저하게 하루 한 편의 규칙을 지키고 있다. 매일 같이 영화보고 책이나 읽는 생활의 연속. 생산성 있는 활동없이 이렇게 한량처럼 살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자가격리 중이니까 뭐, 그래도 되겠거니..

영화를 보면서는 자가비를 먹었다. 영화가 책보다 나은 점 중 하나는 무언갈 먹으면서 볼 수 있다는 점. 책 보면서 먹으면 책장에 이물질 묻어서 짜증남

 

영화를 보고 나서는 저녁을 준비했다. 엊그제 쿠팡에서 배달 온 토시살을 이용해 소고기 알리오올리오를 해먹을 생각.

 

잠시 휴식 중인 토시살의 모습

원래 알리오올리오가 그렇듯 사실 별건 없고, 스탠팬에서 먼저 소고기를 구워 다른 접시에 옮겨 놓은 뒤, 같은 팬에 올리브유 넣고 마늘을 잠시 볶다가 충분히 향이 우러나오면 면수를 부어 팬에 붙어있던 육즙을 디글레이징하고 거기에 면을 다시 올린 후 열심히 유화시켜 완성하는 레시피. 중간중간 페퍼론치노와 후추, 레지아노 치즈를 조금씩 곁들였다. 

 

마늘을 편 썰지 않아 비주얼이 썩 훌륭하지는 않으나, 맛은 딱 내 입맛에 맞았다. 이럴때면 요리하는 보람이 있음

 

잽싸게 즉흥적으로 한 것 치고는 꽤나 만족.

 

담번엔 더 두꺼운 스테이크 가지고도 시도해보고 싶다. 

 

만드는데 거의 15분은 걸렸는데 먹는데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참고로 설거지하는데도 5분 넘게 걸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요리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에 돌아오니 아빠가 예전에 내가 파리 면세점에서 사왔던 브랜디를 드시고 계셨다. 내가 산거니까 하도 한 잔 얻어와 방에서 격리 혼술. 사실 살때만 해도 위스키인줄 알고 산 것인데 브랜디였다니. 이것 참.. 안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알지못하는 인생사. 나도 코로나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건만 누가 갑자기 이렇게 자가격리하게 될 줄 알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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