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식사일기, 14일차 - 자가격리의 마지막 밤

뒤돌아보면 금방이다. 외출없는 2주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건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순식간에 흐른 것만 같다. 매일이 비슷한 일상이라 날짜 감각이 무뎌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내일이면 자가격리가 해제된다. 엄마도 오늘 생활치료센터를 퇴소해 집으로 돌아왔다. 더이상 살얼음판 걷듯 불안에 떨 필요도, 아침 저녁으로 체온을 보고할 필요도, 방안에서 혼자 식사할 필요도, 거실에 나갈때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도, 현관문 밖으로 나가선 안 될 이유도 없다. 모든 것이 이전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이 평화를 되찾은 것과 달리, 바깥은 이제 혼돈이 거세지고 있다. 오늘 확신자 수는 무려 950여 명. 지금의 추세면 천 명 돌파가 머지 않은 듯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소용돌이의 초입에 있다. 그말인즉 그안에 속해있는 우리 가족이 찾은 평화 역시 진짜 평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앞으로 버티고 이겨내야 할 날이 많이 남았다. 자연재해처럼 불가항적으로 날뛰는 코로나 앞에서 인간이 별 수 있나. 그저 이겨내야한다. 이기려면 먼저 잘 먹는 것이 우선이다. 김훈 작가는 정은경 청장의 한 인터뷰를 듣고 '살길은 생활 속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각자의 생활 속에서 각자 먹고 버티다보면 언젠가 이 고난도 끝이 나리라 믿는다.

<자가격리 식사일기>는 여기서 마무리한다. 비록 소소하고 미미하지만 이 작은 이겨냄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 혹은 위로가 되었다면 더이상 바랄 바 없겠다.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와 우리 가족을 비롯해 코로나로 고생하는, 고생했던, 고생할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오늘 아침은 걸렀다. 보건소에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입맛이 없었고, 음성 판정을 받고나니 그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그냥 한숨 더 잤다. 

조금 눈을 붙이고 나니 엄마가 집에 도착했다. 후유증도 없고 컨디션도 좋아보여 다행이다. 오자마자 북어국을 끓여주셨다. 오랜만에 진짜 집밥을 먹었다. 

 

오늘이 자가격리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축제라도 벌여야할 것 같은데, 막상 할 건 또 없다. 저번에 잔뜩 주문해놓은 과자 중 남은 것을 하나 둘 처리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벼르고 벼르던 영화 <포드 V 페라리>를 봤다. 왓챠와 넷플릭스에 없어 네이버에서 돈 주고 봤다. 러닝타임이 조금 길지만 멋진 영화였다. 

극장에 온 기분을 내보려고 콜라도 종이컵에 따라오고, 팝콘 대용으로 자가비도 한 봉 뜯었다.

 

그리곤 내가 어릴 적부터 좋아해온 과자인 닭다리 스낵도 먹었다. 언제 먹어도 맥주가 땡기는 맛. 

 

며칠 전 만들어 놨던 토마토 소스로 파스타를 해먹기로 했다. 오래 보관하면 상할 것도 같고, 격리 중에 만들었던 소스니 해제 전에 해치우고 싶기도 하고, 엄마가 집에 오랜만에 왔으니 대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남은 면을 다썼다. 데체코와 바릴라의 링귀니 면을 번갈아가며 쓰고 있는데, 아직도 어느 쪽이 더 내 취향에 맞는지 모르겠다. 둘 다 오뚜기보다 낫다는 건 확실함

 

파스타 젓가락에 돌돌 말아서 플레이팅했다. 면 양이 많았는지 어째 저번에 비해 신맛이 많이 무뎌져 라임즙 조금 추가했다.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지금은 레돈도 먹으며 마지막 포스팅 쓰는 중

내일 낮 12시에 알림 문자가 오면 격리가 해제된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일상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개운한 기분이다. 코로나와 관련된 이 모든 혼란도 자가격리처럼 기다리다보면 불쑥 오는 문자 한 통으로 뚝딱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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