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8월 호] 연료충전일지 : 코로나 후각상실 특집

생애 첫 코로나가 찾아왔던 8월. 후쿠오카 여행을 한 주 앞두었던 시점, 설마설마 했는데 후각이 사라졌다. 

여행의 의미의 90%를 먹는 것에서 찾는 나에게는 가혹한 시련.. 물론 결국엔 잘 다녀오긴 했다. 

아무튼 8월의 냄새없는 식사 일지 스타트

 

8월 초의 아침. 아직 코로나에 걸릴 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하고 있을 때다.

 

회사 행사 후 다음날, 해장을 위해 버섯칼국수 집으로 출근했다. 

 

아직 좋지 않은 속을 부여잡고 점심엔 택시까지 타고나가 오레노라멘에서 토리파이탄을 먹었다. 해장이 되는 듯 안되는 듯 묘한 느낌. 

 

정체 불명의 음식을 파는 곳이 집 앞에 생겼길래 한번 찾아가봤다. 토르티야 같은 것 안에 햄버거 패티 비스무리한 걸 넣고 오븐에 구워서 내는 음식인데, 고기패티의 맛도 그저그런데다 소스가 달아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내용물과 껍질 사이의 공간이 넓어 한 가지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보다는 먹을 수 있는 종이컵에 담긴 고기완자를 먹는 느낌이었다. 

 

회사 동기와 즐겨 찾는 공덕의 한 터키식 고깃집. 후무스와 고기 한판 시켜 야무지게 먹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곳이 코로나의 시발점이었을지도 모를 것이.. 이 날 함께 점심을 먹었던 친구도 나와 하루 차이를 두고 코로나에 걸렸다. 

 

아직 코로나 증상이 없던 날의 저녁. 베이컨 굽다가 갑자기 삘꽂혀서 짜파게티도 하나 볶음

 

프리다이빙 강습을 받고 난 후의 점심.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전혀 증상이 없었다. 

영국 가정식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뭔가 기묘한 컨셉의 식당이었음

 

점심을 살짝 부실하게 먹어서 간식으로 포케도 먹었다. 근데 어째 내가 아는 포케랑은 좀 다르게 생김

 

아프기전 마지막 저녁. 아플 줄 몰랐기에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몸이 굉장히 무겁고 목이 살짝 아팠다. 컨디션 난조로 판단하고 만병통치약인 빅맥세트를 바로 주문, 섭취했으나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출근해 오전부터 골골거리다 병원에 갔다. 코로나일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고 기왕 병원 간김에 신속항원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음성. 그냥 냉방병이겠거니하고 업무 보다가 퇴근 시간 즈음 보건소로부터 문자를 한통 받았는데 그것은 PCR 양성이라는 통보.. 흑흑

즉시 짐싸서 귀가 후  재택 시작했다. 사진은 동행자가 보내준 쿠폰으로 재택 중에 먹은 죽.

 

후쿠오카 여행이 며칠 남지 않았기에 애써 컨디션이 좋은 척 몸을 속이기 위해 피자를 시켜먹었다. 그러나 이 피자가 8월에 맡은 마지막 음식 냄새일줄이야...

이날 저녁부터 코가 심하게 막히기 시작하더니 결국 자고 일어나니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게되었다. 

 

그리고 오게 된 일본. 컨디션은 그럭저럭 말짱해졌으나 냄새가 아예 나지 않았다. 마치 이 세계에 냄새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냄새의 낌새마저 없었다. 맥주를 마셔도 그저 탄산수를 먹는 느낌뿐. 

 

후쿠오카에서 첫끼는 라멘집에서 먹었다. 원래 봐둔 돈코츠 집이 있었건만 웨이팅이 길기에 전혀 아쉬움 없이 그냥 옆에 있는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라멘은 다소 기묘해서 두유라멘과 토마토 라멘을 파는 곳이었는데, 어차피 나는 냄새가 안나니 둘다 짭짤한 물에 담겨있는 면을 먹는 느낌 뿐이었다. 

 

라멘집 옆에 커피 집이 있기에 들어갔다. 함께 간 친구가 저번에 왔을 때 왔었던 곳인데 기억이 좋았었다고.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는 스타일의 카페였다. 편안히 담소를 나누기 딱 좋은 사이즈의 테이블이 칸을 나눠 놓여있고 쇼파는 푹신했다. 

한번 앉으면 두시간은 그냥 수다를 떨 수 있을만한 공간이었다. 자릿세가 반영됐다고 생각하면 커피값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일본 여행에서 의외로 가장 맘에 들었던 공간.

오른쪽 사진의 장화컵은 너무 귀여워서 재고가 있는 다른 매장을 찾아 선물용으로도 샀다. 

 

사실 이번 후쿠오카 여행의 컨셉은 일본 프로스포츠 관람. 소프트뱅크의 홈인 페이페이돔에서 일본 프로야구를 관람했다.

(냄새는 안나지만) 핫도그도 사먹고 지나가는 아사히걸에게 맥주도 시켜봤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일본 야구를 또 직관해보겠어.

 

페이페이돔 앞에 있는 스탠딩 이자카야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런 타치노미 집에서 저녁에 간단히 서서 일본쐬주 한잔을 때리는 것이 또 나의 로망이었는데, 후각을 잃어버려 반쪽짜리 경험이 되어버렸다. 뭐 그래도 반쪽은 경험을 한 셈이니 또 아주 최악은 아니다. 사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냄새 안나는 닭꼬치와 닭간빠테를 일본소주와 먹어보겠어요.(웃음)

 

다음 날 아침은 일본 3대 김밥천국이라는 요시노야에 가서 덮밥을 먹었다. 저렴한 가격에 적당한 맛(으로 추정). 그야말로 일본 김밥천국이었음.

 

후발대 인원들과 만나서는 소바를 먹었다. 맛은 아무데나 그냥 보이는데 들어가서 먹은거 치고는 제법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내게는 그냥 닭고기튀김과 짭짤하고 시원한 면을 먹는 느낌. 사실 어딜가나 맥주가 제일 맛있었음

 

이번 후쿠오카 여행에서 모츠나베는 꼭 먹고 싶어서 한국에서 예약까지 하고 왔었는데, 

막상 후각이 없으니 딱히 입맛이 없어 맥주만 시원하게 마셨다. 살면서 입짧은 적이 한번도 없었던 나인데.. 이렇게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게되었다.

 

모츠나베를 먹고는 스포츠 친구와 함께 바로 축구장으로 이동해 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맥주는 거의 자리를 이동할때 마다 마신 듯.

규모에 압도됐던 돔 야구장과 달리 축구장은 위치도 외진곳에 있고 경기장도 그리 대단치는 않았다. 다만 티켓값이 제법 비싼데도 불구하고 관람석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찬다는 점이 놀라웠다. 

 

참고로 마지막 사진의 카레우동은 냄새 없이 먹으면 걍 짠물우동에 불과하다

축구를 보고 나서는 이자카야에서 일행들과 재회했다. 구글 리뷰만 보고 식당을 고르다보니 흡연식당을 골라버렸는데 나는 악취에도 면역이 있어 전~혀 타격이 없었다. 냄새가 돌아온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후각이 없는게 안 좋기만 한건 아니다. 세상 모든 땀냄새와 찌린내에서 프리해질 수 있음

 

일본에 왔으니 스시를 안 먹고 갈 수는 없었음

근데 의외로 스시가 냄새 안 나도 먹을만한 음식이긴 하더라고

 

일본 매장에 한국에도 없는 순한너구리가 당당하게 있길래 신기해서 찍어봄

 

일본을 떠나는 날은 야키니쿠를 먹었다. 친절하게 한국말로 다 부위이름을 적어줘서 좋았음

 

후식으로 냉면도 먹었는데, 평양냉면과 밀면 그 어느 사이에 있는 맛이지 않을까 싶은데.. 나중에 말짱한 컨디션으로 다시 돌아가서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

 

귀국 후 첫 식사는 샤이바나에서 급식스파게티맛 나는 토마토스파게티를 먹었다. 향이 안 나니 신이 안 나서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결국에 배는 몹시 불렀음

 

그날 오후에는 생애 첫 스크린 골프를 쳤다. 스크린골프엔 짜장면이라길래 짜장면 시켜먹음

 

일본 면세점에서 살거 없어서 나온 도쿄바나나와 명란과자도 하나 씩 먹어봤다. 

도쿄바나나는 달고 명란과자는 짜다. 

 

거래처와의 점심 대게파티. 다 짤라서 줘서 좋았음

 

베트남 음식점에서의 점심. 이날 열흘 정도만에 미약하게나마 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느억맘 소스. 

비릿하고 지린내스러운 느억맘 소스의 향이 코를 뚫고 들어왔다. 이때의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음

그러나 이날 부터 더러운 화장실에 가면 지린내는 모두 감지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

 

느억맘 소스보다 약한 녀석들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이이제이의 정신으로 코로나 맥주를 한병 들이켰으나 차도가 있지는 않았다.

 

간만에 보는 동아리 친구들과의 저녁. 숙취 최소화를 위해 일찍이 네시부터 만나서 먹었는데,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다보니 결국 열두시에 집에가게 되어 숙취는 오히려 두배가 되었다는 이야기~

 

숙취를 안고 치킨버거를 먹으러갔다. 숙취로 컨디션이 안 좋으니 안그래도 안나는 냄새가 더 안나는것 같기도. 

 

냄새 안나는 와중에 별걸 다 먹었다. 요건 오리덮밥. 오리는 맛있는데 맛이 밍숭맹숭하다. 

앗차차 나 냄새가 안나서 그렇게 느꼈던듯.

 

오랜만에 보는 동네친구들과 몹시 과음했던 날. 두번째 사진의 가평소주 저거.. 25도인데 그냥 소주처럼 생겨서 전혀 조심하지 않고 빠르게 들이킨 것이 패인이었다..

 

술 많이 먹은 다음날 해장은 이상하게 탄수화물이 땡기더라. 도시락라면에 밥도 말아 먹음. 

밥을 말아먹다가 문득 깨달았다. 냄새가 슬슬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기쁜 마음에 맥도날드도 시켜먹었다. 

 

후각 단련을 위해 베트남 음식을 또 다시 도전. 근데 이날 먹은 분짜는 내가 먹어본 분짜 중 가히 최고. 

나중에 또 가보고 싶은 곳이다. 상호는 안웅

 

저녁은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그냥저냥 때웠다. 코로나로 냄새가 안나는 동안 적게 먹어버릇하니 이젠 맛이 있는 음식이 아니면 굳이 많이 먹지 않게 되었다. 음식에 조금은 까탈스러워진 나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왜냐면 그동안 살이 조금 빠졌기 때문 ㅋㅋ

 

상영시간이 긴 영화가 많은 요즘 꿀팁이 하나 있다면, 짠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면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덜 해진다는 건데 그 이유는 짠 음식을 먹으면 삼투압 현상 때문에 방광의 수분이 덜 차게 된다는 것. 아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고 내가 그냥 머리 속으로 지어낸건데, 몇 친구들에게 임상실험을 해본 결과 심지어 팝콘통을 껴안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나도 스스로 실험해보았는데 역시나 효과가 있었다. 여러분도 시도해보시길.

 

영동설렁탕에서의 점심. 내 돈으로 먹는게 아닐때 수육은 더더욱 맛있다. 

 

스크린골프에 맛이 들려 다시 치러갔다. 요번엔 맥도날드를 사서 갔는데 어쩐지 간만에 상하이스파이스가 먹고싶어서 먹음

 

회사 점심으로 가격이 어마어마한 중식당에 갔다. 내 돈 내곤 절대 못가~

 

광화문에 파파이스가 생겼길래 퇴근하고 가서 세트 하나 슥 먹고 왔다. 다른거보다 치킨버거의 튀김이 부드럽게 바삭한것이 킥. 굳이 맘스터치 갈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파파이스가 근처에 있기만 하다면 말이지. 

 

입맛이 좀 돌아온 김에 한국인 정식으로 집밥 차려 먹었다.

후각상실로 고생했던 8월 식사일지 끝. 근데 어째 다른 달보다 더 잘 먹고 다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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