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니꾸, 신대방삼거리 - 화로구이에 매료되다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19. 11. 22. 08:49
화로구이, 이름만 들어도 설렙니다. 뻘건 불 위에 철판을 올려 놓고 그 위에 고기를 한 점 두 점 얹습니다. 잘 달궈진 철판에 닿은 고기는 자기도 모르게 치이익 맛있는 소리를 내고, 그 앞에 앉아 있는 우리도 덩달아 침을 꿀꺽 삼킵니다. 고기는 금방 익습니다. 한 번 뒤집은 고기에 갈색 자국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고소한 냄새에 젓가락 쥔 손이 초조하게 떨립니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곧이어 고기를 다시 뒤집습니다. 양면이 고르게 익었으니 이제 먹을 때가 되었습니다. 고기를 한 점 입어 어서 입에 가져다 넣습니다. 혀와 만나자 마자 부드럽게 녹아버리는 고기들.. 아아... 제가 생각하는 화로구이집의 모습입니다. 아 물론 저는 화로구이집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화로구이를 떠올릴 때 마다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상상에 지친 저는 이제 직접 화로구이집을 방문해보기로 했습니다. 신대방삼거리에 위치한 우니꾸입니다.
성대시장 중앙길에서 가지쳐 나온 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지도 어플이 잘 되어 있으니 찾아가기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이런 맛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있는 지도 모르면 아무리 지도가 잘 되어 있어도 찾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길을 벌써 10년 넘게 지나다녔음에도 이런 식당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인생의 십년 손해봤어어!
이런 저런 메뉴가 있지만 줌을 땡겨찍지 않아서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직접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시면 더 잘 보입니다.
이곳의 웰컴푸드는 파가 동동 떠있는 맑은 국. 비 오는 날에 덜덜 떨면서 갔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떠 먹었습니다. 맛은 그냥 파가 들어간 국.
이런 것도 화로라고 할 수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여기에 고기를 구울 겁니다. 숯불은 아니고 가스불이지만 기분좀 내보렵니다.
이 집의 진짜 매력포인트는 바로 바 자리 입니다. 비록 저는 일행이 있어서 테이블에 앉았지만, 가끔 혼자 고기 땡기는 날에는 이곳으로 향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기서 혼자 고기 구우면서 맥주 한 잔 할 생각에 벌써부터 설럽니다.
와인 콜키지가 가능하다는데 어차피 집에 와인이 있을리가 없기에 그냥 가게에 파는 와인을 시켰습니다. 매번 와인 종류는 바뀐다는데 가격은 2만원으로 동일한듯합니다.
고기가 나오기 전에 이렇게 찍어먹을 소스, 소금 그리고 곁들일 수 있는 할라피뇨(혹은 고추 장아찌)와 양파가 나옵니다. 사실 할라피뇨인지 고추 장아찌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매콤새콤한 것이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토시살 2인분을 우선 주문했습니다. 숙성된 소고기를 판매하신다고 합니다. 소든 생선이든 숙성 시키면 감칠맛 요소들이 분해되기 때문에 더욱 맛이 좋아집니다. 물론 그 차이를 느끼려면 숙성된 소고기와 싱싱한 소고기를 동시에 놓고 먹어봐야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혀는 그런거 잘 모르는 둔감한 혀기 때문입니다.
마음같아서는 딱 두 점 씩만 올려서 챡챡 구워 먹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배가 너무 고파 네 점을 한번에 올리는 것으로 타협했습니다.
사장님이 친절하게 굽는 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토시살은 특유의 육향이 있기 때문에 너무 덜 익히는 것보다는 미디움으로 익히는 것을 추천하고, 고기에 육즙이 송글송글 올라올때 쯤 뒤집으라는 조언입니다. 그리고 토시살은 소금보다는 소스에 찍기를 권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사장님이 구워주신 고기가 양파 위로 올라왔습니다. 입에 넣고 한 번 씹는데, 아, 그야말로 부드럽게 녹아 없어지는 식감입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어서 정말 쓰고 싶지 않지만 이 고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 밖에 할 수 없겠습니다.
사장님의 기운을 이어받아 이제 제가 집게를 잡았습니다. 하라는 데로 칙칙 구워먹는데 제가 구워도 맛있습니다. 신나는 기분으로 콧노래 흥얼거리며 고기를 굽습니다. 고기에 지방이 적음에도 질감이 부드러워 턱이 고생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육향이 조금 있는 듯한데 이 정도면 그리 거슬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토막상식. 토시살은 소의 횡경막을 둘러싸고 있는 살입니다. 소 한마리에 겨우 550그람 밖에 나오지 않는 고오급 부위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쌈마이 고기 뷔페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부위인데 그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내장 바로 옆에 위치한 부위인 만큼 소고기 특유의 육향이 강합니다. 여기서 호불호가 종종 갈리곤 하는데 그럼에도 부드러운 근섬유 덕분에 식감이 좋아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토시살 먹으면서 공부한 내용을 기록차원에서 정리해본 것입니다.
사장님은 소스에 찍기를 권하셨지만, 어째 저는 후추와 소금에 찍어 먹는게 더 좋았습니다. 소금의 짠 맛이 소기름과 만나 고기 자체의 맛을 더 잘 살려주는 느낌입니다.
중간중간 와인도 잊지 않고 성실하게 마셔줍니다.
이제 토시살로 배를 채웠으니 이제는 안주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킨 우설입니다. 지난 부일갈매기에서도 우설을 구워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비해 아주 얇게 썰어 나온 모습입니다. 어차피 와인도 많이 남았고 길게길게 가야하니 이렇게 얇게 썰려 갯수가 늘어난 것이 더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딱 두 점 씩만 올려서 너-하나-나-하나 시스템을 정착시킵니다.
그릴 모양이 찐하게 찍힌 우설입니다. 아까는 부드러워 매력적인 근육의 토시살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있는 근육의 우설입니다. 우설 특유의 농후한 지방맛이 입안을 강타합니다. 아 이 맛에 우설 굽습니다. 기름져진 입을 와인으로 싹 정리하고 나면 다시 다음 한 점을 먹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종종 우설이 소 혀라는 사실에 사로잡혀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용기 내 먹어보기를 권합니다. 정말 매력있는 부위니까요. 생각해보니까 사실은 굳이 용기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면 수요가 적어야 이미 비싼 가격이 그나마 유지가 될테니까요...
이제 와인도 거의 다 먹어가겠다, 배도 좀 찼겠다 싶어서 먹고 개운하게 마무리하려 주문한 김치말이국수입니다. 메인이 고기임에도 꽤 준수한 국수가 나왔습니다. 기대를 훨씬 웃도는 시원한 맛입니다. 김치말이국수를 먹으며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하고 났더니, 아뿔싸 다시 식사를 시작해도 되겠다는 시그널이 옵니다. 깨끗해 졌으니 다시 입에 기름칠을 하라는 뇌의 신호.
아까부터 궁금했던 메뉴인 닭목살을 주문했습니다. 사실 다른 어느 가게에서도 보지 못한 메뉴입니다. 돼지 목살 구이 파는데는 봤어도 닭 목살 구이는 생소합니다.
그래서 굽는 법도 잘 모르겠어서 사장님께 문의, 그냥 갈매기살 굽듯이 구우면 된다고 합니다.
먹음직스럽게 익어갑니다.
닭목살은 닭목 맛이었습니다. 닭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로 닭목을 꼽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비록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닭목을 조금씩 물어뜯다보면 씹히는 그 꼬독꼬독한 근육이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이 곳의 닭목살은 닭목의 그 매력적인 근육들을 그대로 발라내놓았습니다. 닭목 먹을 때마다 '아 맛은 있는데 누가 좀 발라줬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 곳이 그 역할을 해준것. 순살 닭목입니다.
와인은 다 먹었으니 맥주 한 병 주문했습니다. 아재 언어로 말해 시아시가 잘 된 맥주입니다. 딱 알맞게 시원해서 벌컥벌컥 마시기 좋습니다.
닭목은 양파에 잘 어울립니다.
아주 이것저것 잘 구워먹은 한끼였습니다. 화로구이의 로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가격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혼자 가기도 용이할 것 같으니 집 가까운 저로서는 안 갈 이유가 없겠네요.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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