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태, 해방촌 - 외딴 곳에서 만난 오리 국수

해방촌에 볼 일이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 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일부러 들른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국수가 볼 일이었다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마을버스 타고 언덕배기를 구비구비 넘어 만난 '고미태'입니다.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에 그닥 편리한 위치는 아닙니다. 마을버스를 타면 앞에 내려주기는 합니다. 

 

고미태는 계절마다 메뉴가 바뀌는데요, 여름에는 콩국수도 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올해 어떤 메뉴를 하실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계속 오리 국수라고 했지만 좀더 정확한 명칭은 시오라멘입니다. 다시 말해 소금 라멘인 셈입니다. 라멘 장르 중에 하나인 시오라멘은 돈코츠 라멘이나 쇼유 라멘에 비해서는 다소 사람들에게 낯선 편인데요, 보통 맑은 육수를 베이스로 소금으로 간과 맛을 낸 라멘을 이야기합니다. 소금은 타래 소스(간장)에 비해 육수 본연의 맛을 가리지 않기에 다른 어떤 라멘보다도 육수가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오라멘은 깔끔한 맛으로 정갈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가제면 국수, 잔술을 주로 판매하십니다. 용인지 도마뱀인지 알 수 없는 저 초록색 파충류가 마스코트인 모양.

 

가게 내부는 정말 깔끔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대략 10석 규모구요. 주방과 이어진 일자 통로로 사장님이 오고다니며 서빙을 담당하시고, 그 통로를 감싸는 모양으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디자인이나 가구들이 상당히 감각적입니다. 인스타그래머블하다고 할 수 있겠어요.

 

다만 식당 내부에 향 냄새가 강하게 감돕니다. 스트릿 의류 편집샵에서 흔히 맡을 수 있던 나그참파와 비슷한 향인데요, 글쎄요. 식사 경험에 있어 향 냄새가 요리와 부딪히게 된다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 나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마 사장님의 어떤 뜻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에서는 레몬향이 납니다. 꽤 강렬한 편.

 

오리 시오 라멘 (9,000원)

메뉴는 단일 메뉴로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저도 메뉴판 따로 안 찍어도 돼서 편했습니다. 

오리로 육수를 낸 라멘은 아주 깔끔하게 플레이팅되어 나옵니다. 인스타그래머블합니다. 인스타엔 올리지 않았지만 제 마음에도 들었어요. 면 위로 쪽파, 시금치, 반숙란, 오리고기, 미역, 표고버섯 그리고 오리껍질 튀김까지 꽤 다양한 고명이 올라가는데, 사장님은 섞지 말고 면과 함께 먹기를 추천하셨습니다. 

 

깔끔하게 개어진(혹은 개어놓으려고 노력한) 면도 하얘서 보기 이쁩니다. 여지껏 본 라멘 플레이팅 중에서는 최고인 것 같아요. 

국물에는 오리 향미유의 맛이 강하게 올라옵니다. 첫인상에서 확실히 오리를 주로 삼은 라멘이라는 느낌을 주고 가네요. 국물 염도는 그리 강하지 않고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온도도 적정하구요.

 

검정색 수저도 마음에 들어서 찍어봤습니다.

 

얇은 편인 면은 꽤 라멘스럽지만 보통 라멘보다는 더 익혀져서 나옵니다. 제 취향보다 더 익혀진 셈인데 되려 이 국물에는 더 어울렸습니다. 꼬독꼬독 씹히는 수준으로 삶아졌다면 이 국물과 다소 맞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정도 차지게 씹히는 면이 오리 육수와 더 잘 어우러졌습니다.

 

오리껍질 튀김입니다. 바로 먹으면 다소 딱딱하고 국물에 충분히 담가서 부드럽게 불린 후 면과 함께 먹으면 좋습니다.

 

찢어서 올린 오리고기들인데 그리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차슈 역할로는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오리 고기 특유의 질감이 살아 있습니다.

 

면 한 가닥 되게 거슬리네

고명도 콤보세트로 함께 먹어도 보고 그랬습니다. 생각보다 시금치가 국수와 잘 어울려요.

 

반숙란도 잘 삶아졌습니다. 다만 육수의 맛이 강하지 않다보니 계란을 먹고난 이후에는 오리보다는 반숙 향이 제 입안을 지배하는 느낌. 

 

그래도 깔끔하게 비웠습니다. 원래 라멘 스프 끝까지 먹는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이 날은 그릇이 너무 하얘서 왠지 다 비우고 싶더라구요. 맛있는 국수였습니다. 이 한 그릇을 위해 이 동네를 다시 찾을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오늘 제가 이곳에 오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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