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게레로] 삼성동/코엑스 - 서울의 타코를 찾아서

LA에서 인턴하던 시절에는 타코를 참 많이 먹었습니다. 멕시코와 가까운 엘에이에는 맛있는 타코집이 많았었죠. 특히 하루종일 일하고 동료들과 맥주 한 잔 적시며 함께 먹었던 타코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겨우 1년 남짓한 엘에이 생활이었지만, 타코는 제 인생의 음식 중 하나로 남게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도 종종 타코가 땡기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야말로 타코 불모지, 정통 타코는 고사하고 타코벨 조차도 점점 매장을 빼는 추세입니다. 어디 타코 비슷한거라도 먹기 힘든 곳이죠. 그러던 와중, 그나마 정통 타코 비슷하게 하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오늘의 고메투어, 비야 게레로입니다.

 

일요일 7~8시 사이에 방문했었는데, 자리는 널널했습니다.

코엑스에서 인터컨티넨탈호텔 면세점 쪽 출구로 나와 삼성중앙역 방면으로 6~7분쯤 걸은 후 골목길로 들어오면 타코집이 절대 없을 것 같은 곳에 비야게레로가 있습니다. 간판이 크게 있는 것도 아니기에 눈을 크게 뜨고 잘 찾아 다녀야 합니다.

 

강렬한 글씨체
멕시코 맥주도 팝니다. 굳이 하나 먹겠다면 도스 에키스 추천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LA에서 5불에 타코 3개를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천육백원에 타코 하나는 너무 비싼 편이죠. 그러나 이것이 서울 평균 타코 가격인 것 같습니다. 타코 불모지에서 타코를 먹으려면 감수해야하는 부분. 

타코는 속의 어떤 고기를 넣느냐, 또 고기를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이름이 나뉩니다. 유명한 것으로는 알 파스토르(돼지, 특히 케밥 고기),  카르니타스(돼지), 카르네 아사다(소), 카마론(새우), 렝구아(소 혀) 등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카르니타스가 주력인 듯 합니다. 카르니타스로 유명한 미초아칸 스타일로 조리하신다고 메뉴에 적혀있네요.

카르니타스는 연해질 때까지 향신료와 라드와 함께 푹 끓여낸 돼지고기를 이야기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냥 돼지고기 타코가 먹고 싶을 때 카르니타스를 시키곤 했습니다. 한국인 입맛에 가장 무난한 타코이기도 합니다.  

메뉴에서 하나 헷갈리는 것은 카르니타스 하위 분류로 있는 혀입니다. 소 혀를 쓴건지 돼지 혀를 쓴건지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소 혀로 만든 타코나 브리또가 사실 기가 막히거든요. 혀 고기라는 점에서 다들 처음에는 거부감을 갖지만 한 두번 먹어보면 금방 그 맛에 중독되고 맙니다. 사실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도 여기 렝구아가 메뉴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살코기(4,600원), 혼합(4,600원)

재료 소진으로 이 날 주문 가능한 것은 살코기와 혼합뿐이어서 그렇게 두개를 시켰습니다. 혀가 먹고 싶었는데, 혼합에 조금 들어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비주얼은 꽤 그럴듯합니다. 옥수수 토르티야에 잘 삶아낸 고기를 올리고 위에 양파와 고수를 뿌렸습니다. 옆에 라임 한 쪽 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타코 필수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살코기, 생긴 것은 준수

가격이 가격인 만큼 고기 양은 풍부합니다. 어차피 조막만한 토르티야 위에 많이 올려봤자 얼마야 올라가겠냐만은..

먹어보니 고기에 양념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 대신 소스를 고기 위에다 따로 뿌리신 모양입니다. 보통 제가 알고 있던 카르니타스는 고기 자체에 양념이 돼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제가 미국에서만 타코를 먹어봐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타코는 미국에서도 어딜가나 다 조금씩 다르거든요. 엘에이 타코 다르고 샌프란 타코 다르고 뉴욕 타코 다릅니다. 엘에이 내부에서도 가게 마다 다들 내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래도 제대로된 타코라면 꼭 가지고 있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옥수수 토르티야, 양파, 고수 그리고 살사 입니다.

 

그렇습니다. 타코에 라임을 짜넣고 막상 한 입하려고 하니 뭔가 빠진듯한 기분이 납니다. 바로 살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옥수수 반죽 구운 것에 고기를 채소 조금이랑 싸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타코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살사입니다. 

나름 정통 멕시코 스타일을 내려고 노력하신 것 같은데, 살사를 주시지 않으셔서 의아한 마음에 카운터에 물어보자 바로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내어주십니다. 

살사는 꽤 매운 편인데, 그럴 듯한 맛이 납니다. 뭔가 이제야 완성된 느낌이 나네요

혼합, 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

고기에 양념이 되어있지 않아서 그런지, 타코 자체는 조금 밍밍합니다. 고수향도 조금 약합니다. 이건 어쩌면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고수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사 없이 먹으면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고기 자체는 푹 삶은 수육 맛이 납니다. 고기 양념 대신 들어간 소스가 그나마 밍밍한 맛을 잡아주는데, 소스의 양이 좀 적은 느낌입니다. 

제 살코기 타코는 비계가 많이 섞여 들어가 좀 느끼하다는 인상이었는데, 동행자의 살코기는 조금 퍽퍽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재료 막바지니까 그랬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혼합은 훨씬 좋습니다. 오독오독 씹히는 내장육의 맛도 좋고 혀의 탱탱한 식감도 살아 있습니다. 혼합만 두 개 시킬껄 후회가 됩니다. 

사실 이곳에 가기전에 가장 우려했던 점은 토르티야였습니다. 피자가 도우 놀음이고 초밥이 샤리 놀음이듯 타코는 사실 토르티야 놀음이라고 저는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제대로 된 옥수수 토르티야를 써야 고기의 맛도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곳 토르티야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먹고 나서 손에 달달한 냄새가 배는 것도 좋습니다. 베스트는 아니지만 '미국도 아니고 한국에서 이 정도면 준수하지' 정도의 느낌입니다. 미국에도 이것보다 못한 타코는 쎄고 쎘으니까요.

 

안 먹어도 그냥 찍어봄

아무래도 전체적인 타코 맛이 밍밍한 인상이다 보니, 타코를 내주실 때 소금도 같이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안뿌렸습니다. 살사 뿌리는게 더 맛있음.

 

멕시코 느낌나는 글씨체를 잘 찾은 것 같습니다
식당 음식 맛 중 70%는 분위기라고 백종원 센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책상도 이런 느낌

타코 두개에 거의 만원 가까이 냈지만, 그럼에도 한국에서 이 정도 퀄리티의 타코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습니다. 다만 원래 타코를 즐기지 않는 분이 첫 경험으로 먹어보기엔 그렇게 추천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워낙에 낯선 맛이니까요. 어쩌면 한국에서 정통을 추구하는 가게의 딜레마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국인 손님도 꽤 있는 편입니다. 나중에 코엑스 올일이 또 있으면 혀 먹으러 다시 방문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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