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코, 내방역/방배 - 야끼소바와 롤 그리고 제대로 된 분위기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3. 20. 08:38
식사를 위해 음식점을 찾을 때는 보통 블로그를 참고합니다. 흘러가듯 지나가다 본 포스팅에서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발견하면 지도에 메모해두기도 하고, 때론 약속 장소를 키워드로 먹을 만한 곳을 검색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종종 '내가 좋은 식당들을 놓치고 있진 않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분명 블로그에서 핫하지는 않더라도 맛있고 매력적인 가게들이 있을 텐데요. 너무 블로그에만 의존한 나머지 그런 식당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늘 방문한 '모코'도 그렇게 블로그 사각지대에 있는 음식점입니다. 출중한 분위기와 훌륭한 음식 솜씨를 갖추고 방배동에 위치하고 있으나 아직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지 못한 듯 합니다. 저 역시 블로그를 보고 근방에 다른 음식점을 찾았다가 허탕을 치고 주변을 배회하던 와중, 매력적인 외관에 이끌려 우연히 이곳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훌륭한 수준에 만족했습니다.
계속 블로그에만 의존하던 동안 저는 이런 식당들을 계속 놓치고 있었겠지요. 저 역시 또 한 명의 블로거로서 새롭게 찾아낸 나름의 맛집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방배동에 위치한 프렌치 재패니즈 레스토랑 '모코'입니다.
거창하게 서두를 시작하긴 했지만 어쨌든 외관부터 좀 남다릅니다. 왠지 여기 있을 만한 식당이 아닌것만 같이 생겼어요.
아무튼 '모코'는 내방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인지 7시가 조금 넘은 저녁시간임에도 아무도 없었는데요. 일단 이 정도 인테리어면 음식이 맛 없더라고한들 평균 이상은 하는 식당이지 않나요..?
적절한 조명도 상당히 예쁩니다. 개인적인 취향을 저격당했습니다.
가게 내부에서는 나무 향이 진하게 올라옵니다. 뉴질랜드에서 잠깐 머물던 시기에 식당을 가면 항상 이런 냄새가 났었는데요. 제가 살았던 홈스테이 집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났었구요. 어딘가 모르게 이 식당에서 저는 뉴질랜드를 자꾸 떠올렸습니다.
깔끔하게 준비된 식탁.
메뉴로 봤을 때는 본격 식사보다는 가볍게 와인이나 술 한잔 곁들이면서 모임하기에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들린거라 술먹을 준비는 안됐고 그냥 간단한 메뉴 두 개만 일단 먹기로 했습니다.
이곳 사장님 커리어가 꽤 화려한 모양입니다. 뭐 어디 호텔에서 일하신 경력도 있나봅니다. 저는 이런거 안 믿는 타입이지만 그래도 괜히 적혀있으면 기대감 상승. 아 근데 그럼 안 믿는게 아닌건가요.
맥주와 와인, 그리고 보드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와인이 조금 땡기긴 했는데 오늘 제가 시킨 메뉴들과는 딱히 어울릴 거 같지 않아서 패쓰
파란 물잔에 빨간 물병인데 물병은 안 찍은듯
원래 그냥 찍는 수저
우선 치킨 야끼 소바가 나왔습니다. 그닥 특별할 건 없고 깔끔하게 볶아졌습니다.
가격 자체는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솔찍히 양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라서 좀 비싼 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게다가 야끼소바야 뭐 어디 술집을 가도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먹어보면 확연히 그냥 야끼소바 이상의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끼소바 특유의 그 단짠단짠한 불량스러운 맛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동시에 그 자극적인 날을 잘 뭉개서 밸런스를 맞춰 놓습니다. 여러 강렬한 맛들을 적절하게 배합하면서 동시에 매콤한 맛까지 살짝 불어 넣어 야끼소바의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누군가는 그래봤자 야끼소바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잘 만들어진 분위기 속에서 먹으니까 특별하게 느껴지는 거라구요. 하지만 분위기를 잘 꾸며 놓는 것 역시 식사 경험의 한 축인걸요.
그래서 결론은 전 굉장히 만족하며 먹었다 이 말입니다. 사실 비싸서 먹기 전엔 부정적인 시선이 컸는데 순식간에 그런 제 마음을 불식시켜 버렸습니다.
앞서 이 가게 분위기가 어딘가 모르게 뉴질랜드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메뉴판을 보니 마침 마누카 꿀이 들어간 요리가 있어서 냅다 시켰습니다. 게살과 아보카도를 넣은 롤 위에다 마누카 꿀을 뿌렸다고 합니다. 마누카 꿀은 뉴질랜드 특산품으로 마누카 꽃에서만 채집됩니다. 아 물론 저도 뉴질랜드에선 먹어본 적 없음
게살과 아보카도를 넣고 두툼하게 말은 롤의 비주얼 자체는 미국에서 먹었던 거대한 장어롤에 가깝네요. 위에는 튀김가루와 아마 타래소스 같은 것 그리고 마누카 꿀이 올라갔습니다.
이 그릇이 참 예쁜 것 같아요. 손잡이 부러진 쓰레받이 처럼 생기기도 했는데 음식을 담아놓으니까 느낌이 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와사비를 조금 올려서 먹기를 권하십니다. 저도 와사비 잘은 몰라도 이 와사비는 좋은 와사비 같았습니다. 왜냐면 아직 와사비 초보인저도 맛있게 먹었기 때문.
맛 자체에서는 의외로 꿀맛이 선두에 서지 않습니다. 즉 엄청 달달한 느낌의 롤은 아니라는 것. 앞선 야끼소바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맛의 뼈대는 단짠인데요, 단과 짠 모두 적당한 선에서만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 둘을 묶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아보카도의 존재입니다. 부드러운 지방 맛으로 두 맛의 가교 역할을 합니다. 거기에 뒤늦게 전해지는 꿀의 향까지. 롤이라는 장르 내에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낸 느낌입니다.
약간 사진을 부실하게 찍은 것 같아서 빈그릇 사진도 찍어본 것입니다.
제게 '모코'는 꽤 뜻밖의 방문이었는데 의외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사실 식사 메뉴 두 개 가지고 이 가게 모든 메뉴가 훌륭하다 예단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이 정도 수준의 식사를 내는 가게에서 엉망진창인 엔트리를 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빠른 시일 내에 재 방문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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