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용 누룽지통닭, 보라매 - 통닭 보다 빛나는 누룽지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3. 23. 08:30
누룽지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 누룽지 경험은 대개 집 안에서로 국한되어 있습니다. 누룽지를 돈 받고 파는 식당은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누룽지 스타일, 즉 냄비밥을 하고 자연스레 생기는 딱딱한 누룽지를 취급하는 곳은 더더욱 흔치 않습니다. 혹시라도 냈다가 손님 이라도 부러지면 누가 책임진다고 감히 누룽지를 팔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누룽지는 제게 집에서만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 누룽지통닭이라는 게 하나둘씩 보이다가 또 얼마전에는 동네에도 하나 생겼길래 가본 이야기입니다.
김종용 누룽지 통닭은 보라매역 바로 근처, 동작 세무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처음 오픈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도 바글바글했는데, 코로나도 겹치고 개업 버프도 모두 끝났는지 이날은 좀 한산했습니다.
입구 왼편으로는 이렇게 통닭들이 장작불에 구워지고 있습니다.
또 한켠에는 장작들도 우르르 쌓여있네요. 길건너 편으로 예전에 포스팅했었던 우동집이 보입니다.
실내는 대충 이런 느낌. 오렌지 컬러를 사용해 웜톤으로 화사한 분위기를 냈습니다. 물론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새 새로 오픈하는 가게들은 하나 같이 힙한 분위기에 신경을 쓰다보니 오히려 이런 식당들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미 통닭의 바리에이션인 누룽지통닭이지만 또 거기서 엄청 많은 바리에이션이 있습니다. 오늘은 처음 왔으니 오리지널을 먹으려다, 오리지널에 막국수를 함께주는 누룽지 쌈닭이라는 메뉴가 있길래 그걸로 간택
기본으로는 그냥 국물이 나오는데요, 놀랍게도 맵습니다. 매울거라 예상을 못하고 먹어서 더 매운맛. 쨍한 매운 맛이 올라옵니다. 이런 건 처음봐요. 함께 했던 친구와 저, 둘다 맵찔이였기에 바로 식탁 구석으로 유배보냈습니다.
막국수가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누룽지 통닭이 더 빨리 나왔습니다. 단품으로 시키면 17,000원
그릇 아래에 누룽지가 붙은 밥을 깔고 그 위로 장작불에 구워낸 통닭을 올렸습니다. 은근히 야성적인 비주얼입니다. 방금 장작불에서 돌아오느라 그을린 닭껍질들을 보세요.. 크으 멋있습니다
엎드려 있는 자태가 언제라도 튀어 오를 것만 같습니다. 아님말구여
일단 한 쪽 뜯어서 앞접시로 가져왔습니다. 기름기도 적당히 빠져서 촉촉하고 부드럽게 잘 구워졌습니다. 게다가 갓 구워 내놓았으니 더더욱 부드럽습니다.
살 자체도 연하게 잘 익었습니다. 다만 닭 자체에 간이 다소 약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잘 조리되었으니 닭맛으로만 먹어도 충분하고, 어차피 이따가 막국수가 나올거니까요.
통닭하면 맥주가 떠오르는 것이 인지상정. 이미 오랫동안 그 공식을 학습해왔기에 이 날도 복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닭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누룽지. 이 누룽지가 먹고 싶어서 굳이 여길 찾은거죠. 찹쌀을 섞어한 밥으로 누룽지를 만들었습니다. 누렇게 익어 바삭한 누룽지와 아직 촉촉함을 잃지않은 밥이 1:1 비율로 함께 나옵니다. 누룽지를 먹을 때는, 물론 누룽지만 먹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누룽지에 붙어있는 뜨끈하고 촉촉한 밥과 함께 먹는 것이 더 좋습니다. 왜냐면 더 맛있기 때문입니다.
누룽지란 결국 밥알에 열을 계속 전달해 수분을 날리고 단단하게 만든 것. 그 과정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며 고소한 향이 더해집니다. 그런 과정에서 누룽지는 필연적으로 딱딱해지고 메마를수 밖에 없는데요, 이 집 누룽지에서는 그런 단점들을 최대한 보완하려한 노력이 보입니다. 아마 찹쌀의 적극적 사용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누룽지를 생각하다보니 누룽지를 좋아하는거에 비해 제가 누룽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되었습니다.
아무튼 막국수는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통닭을 아끼고 맥주를 아낌없이 마시며 막국수를 기다렸습니다.
왜냐면 통닭을 막국수에 싸먹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막국수가 나오자 이렇게 앞접시에 조금 덜어서 먹어보았습니다. 간이 약했던 통닭과 새콤달콤한 막국수는 예상대로 잘 어울립니다. 아무리 예쁜 색이라도 도화지가 없으면 그릴 수 없는 법. 막국수 양념이 활약할 수 있도록 빈 캔버스 같은 맛의 닭이 보조합니다.
막국수 면은 사실 좀 많이 쫄깃한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스타일의 면은 아니지만 뭐 오늘은 누룽지 먹으러 온거지 막국수를 먹으러온건 아니니까요.
누룽지와 통닭과 막국수가 있지만 결국 손이 계속 가는 것은 밥입니다. 은근히 배도 슬슬 부르는데 이상하게 밥만큼은 계속 땡기더라구요. 통닭 없어도 되니 밥만 추가 주문하고 싶을 정도. 밥 자체도 워낙에 잘 지어져서 누룽지가 굳이 없었더라할지라도 매력있습니다.
맛있는 건 여러번 찍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뭐 그래도 막국수와 통닭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워낙 기대 없이 찾아갔던 집이라 의외의 수확에 놀랐습니다. 앞으로 누룽지가 땡길때는 종종 찾아가볼 법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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