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등뼈, 신촌 - 감자탕 아닌 감자탕

감자탕을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남이 감자탕 먹으러 가자고 할때 반대는 안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먼저 감자탕을 먹자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감자탕이면 굳이 찾아가보지 않았을 집인데 한식 감자탕에 재밌는 터치를 가한 집이 있다고 해서 방문해보았습니다.  신촌에 위치한 '신세계등뼈'입니다.

 

신촌역 5번출구 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신세계등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단 가게 외관이 항상이 독특한데요. 창문하나 없는 폐쇄적인 분위기에 시뻘건 문짝이 달려 있습니다. 대강봐서는 그닥 식당 같아 보이지않는 파사드입니다. 음.. 역시 힙한 것이겠지요?

 

신세계등뼈는 유우명 블로거 후후님의 가게라고 하는데요, 뭐 그닥 유의미한 정보는 아니지만 어쨌든 유명 블로거분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대개 나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기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가게의 인테리어가 썩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그 와중에 단 하나 제 맘에 꼭 든게 있다면 바로 이 찬장. 뭔가 괜히 느낌있음

 

메뉴판입니다. 탕으로는 신세계감자탕, 된장 감자탕 그리고 등뼈 스프커리 세 가지가 준비되어있고 가격은 따라 나오는 밥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입니다. 밥으로는 솥밥 종류와 김치볶음밥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온장고에서 묵은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 기분이 좋습니다.

 

테이블은 대강 이런 느낌
와 궁서체
앞면에 원주민 스타일 얼굴이 그려져 있는 컵인데 뒷면을 찍음
밥 떠먹기엔 불편한 수저와 고기 바르기 은근 힘든 포크

음식이 나올동안 할게 없어서 이런것들을 찍고 있었던 것

 

저거 젓가락 겁나 굴러다님

찬들이 푸짐하게 나옵니다. 종류가 조금 많다 싶긴한데 그래도 각각 양이 그리 많지 않아서 남기지 않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만 받쳐나오는 접시가 너무 큰 것이 흠이라면 흠. 이따 나올 감자탕 뚝배기와 솥밥 솥도 만만찮게 크거든요

 

신세계 감자탕 (+ 마가린 솥밥, 12,900원)

우선 가장 시그니처일 것 같은 신세계 감자탕이 나왔습니다. 메뉴판에 적혀있기로는 깔끔한 맛이라고 합니다. 비주얼 자체는 그냥 우리가 아는 그 감자탕에서 빨간색을 뺀 느낌입니다. 

 

고기 붙은 뼈다귀가 두 세 덩이 들어있습니다. 

 

살점도 어느정도 붙어있습니다. 국물에서는 미묘하게 꼬릿한 돼지 향이 배어납니다.

 

우선 국물을 떠서 한 입 맛봤습니다. 꼬릿한 돼지 국물 맛이 진하게 돕니다. 국물 맛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음식은 의외로 라멘이었습니다. 돼지 뼈 국물이기에 너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네요. 왜 원래 감자탕에서는 이런 꼬릿한 맛이 안 났던 걸까요. 시뻘건 고추양념이 그 꼬릿한 향을 다 지웠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지런히 고기를 발라서 국물과 함께 먹습니다. 진한 꼬릿함이 돌지만 그렇다고 국물 맛이 지저분하지는 않습니다. 각이 잡혀 있는 느낌으로 깔끔하게 술술 넘어갑니다. 

확실히 우리가 흔히 먹던 그 한식 감자탕과는 결이 다릅니다. 매콤한 감자탕 국물도 매력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돼지 향 자체를 더 살린 느낌이 더 좋습니다. 온도감이 있을 때는 염도가 그리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으나 국물이 식을 수록 쨍한 염도가 점점 올라옵니다. 이런 부분도 어딘가 모르게 라멘의 느낌을 갖고 있는 듯하네요. 제게는 이 한 그릇이 감자탕의 문법으로 끓여낸 라멘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만 뼈에 붙은 고기 자체는 그닥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감자탕 집을 가나 비슷한게 뼈다귀에 붙은 고기이긴 하지만 이곳의 경우 고기를 발라 먹는 것이 특히 쉽지 않았습니다. 뭉툭한 나무젓가락을 쓰나 준비된 포크를 쓰나 잘 발리지가 않더라구요. 제 요령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가린 솥밥

사실, 감자탕보다 더 기대했던 것은 솥밥입니다. 어딜가도 밥 잘하는 식당 찾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온장고에 몇 시간 푹 묵었던 찰기없고 윤기없는 밥을 먹을 때면 제 아무리 맛있는 반찬도 소용없습니다. 한식은 기본적으로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부수기재로서 역할하는데 밥이 맛없다면 지지고 볶아놓은 산해진미도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라는 것이 제 나름의 음식 철학으로 어디 식당을 가나 밥믈리에의 마음가짐으로 밥 상태를 항상 눈여겨봅니다. 그렇기에 허투루 지어 내놓을 수 없는 솥밥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입니다.

 

아무튼 마가린솥밥의 경우에는 안에 다진고기와 파 그리고 달걀이 들어가고, 솥이 뜨끈할때 마구 비벼서 먹으면 되는 음식입니다.

 

마가린 솥밥인 만큼 마가린도 함께 넣어 비벼 먹을 수 있구요.

 

비비면 대강 이런 모양이 됩니다.

 

누룽지 긁기 좀 귀찮긴함

바닥에 붙은 누룽지도 슥슥 긁어서 몇 숟갈 떠먹어 봤습니다. 계란과 마가린의 효과인지 맛 자체는 꽤 부드럽고 뭉툭합니다. 아마 함께 탕을 먹어야하기에 이렇게 맛을 설정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애당초에 단품으로 먹도록 설계된 요리가 아닌만큼 탕과 함께 먹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느낌입니다. 밥 한 스푼 먹고, 뼈에서 고기 좀 뜯은 다음 국물을 쭉쭉 퍼먹는 그런 구조가 이상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긁어놓으면 누룽지 개꿀

하지만 신세계 감자탕도 느끼한 맛을 끊어줄 수 있는 신맛 혹은 매운맛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기에, 마가린 솥밥은 오히려 뒤에 나올 등뼈 스프커리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살짝 매콤한 맛이 들어가 있거든요.

 

등뼈 스프커리 (+김치볶음밥, 11,900원)

매콤한 맛의 등뼈 스프커리입니다. 아마 삿포로 쪽에서 자주먹는 스프커리를 모티브로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삿포로 안가봐서 잘 모름

 

고기도 공격적으로 들어있습니다.

 

위에는 고춧가루인지 시치미인지가 좀 뿌려져 있네요. 아까 감자탕에도 있었기는 했습니다.

 

국물자체는 아까보다 좀 더 빨갛습니다. 먹어보니 확연하게 올라오는 커리향. 살짝 매콤하면서도 그렇다고 지나치지는 않습니다. 맛있게 매콤한 정도에서 멈추는데 맵찔이인 저도 먹을 수 있을 정도.

 

김치 볶음밥

이번에는 김치볶음밥입니다. 

 

볶음밥안에 고기를 적극적으로 넣은 것이 매력포인트. 볶음밥 자체에 간이 어느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역시나 간이 좀 더 자극적인 스프커리와 먹을 때는 부딪히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겠습니다. 되려 신세계 감자탕과 더 어울릴 듯할 메뉴.

 

뼈다귀에 고기도 발라야 하면서 또 솥밥도 비비랴 누룽지도 긁어내랴 국물도 떠먹으랴 발라낸 고기도 싸먹으라 좀 정신이 없긴했지만 결론적으로 꽤 맛있게 먹은 한 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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