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눈, 서초 - 북한 고려호텔 출신 주방장이 만드는 평양냉면

서초에 위치한 평양냉면 전문점 설눈. 이 집의 냉면을 이야기하려면 고려호텔 요리사 출신인 주방장의 이력을 먼저 거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양에서 3대에 걸쳐 냉면집을 운영하던 노하우를 기반 삼아 탈북 후 차린 식당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설눈의 냉면은 다른 그 어떤 이북 음식점보다도 진짜 '평양'의 냉면과 닮아 있다고들 합니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대개 블로그나 인스타를 통해 스멀스멀 전해지는 풍문일 뿐. 사실 평양에 가서 냉면을 먹어본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그걸 쉬이 단정할 수 있을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설눈의 평양냉면의 생김새는 우리가 알던 평양냉면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특히 메밀을 껍질 채 갈아 거무튀튀하게 뽑은 면이 이 냉면의 독특한 정체성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어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 역시 한 명의 평양냉면 매니아로서 서초동에 위치한 '설눈'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서초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걸으면 5분내로 도달할 수 있는 정도.

 

5월인데 아직도 붙어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컨셉인거 같기도

평양냉면 집 같지 않게 깔끔하고 모던한 외관.

 

가게 내부도 세련됐습니다. 가게 자체는 꽤 넓은 편이고, 룸도 준비되어 있어 모임하기에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고급진 메뉴판,

 

그리고 고급진 분위기에 어울리는 비싼 가격까지 두루두루 갖췄습니다. 저는 혼자 들렀기 때문에 조용히 냉면 단 하나만 주문했습니다.

 

한켠에 겨자와 식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차피 먹지 않지만 음식 나올 때 까지 시간이 남아서 찍어보았습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무절임과 동치미. 하얗게 절인 무절임은 눈에 띄는데 먹어보면 단맛이 꽤 강해서 단무지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동치미는 아주 깔끔하고 시원합니다. 

 

냉면 먹으러 온 것만 아니었으면 접시 째 들고 꿀꺽꿀꺽하고 싶은 맛. 냉면 육수 들어갈 배를 남겨둬야했기에 그냥 숟가락으로 몇 번 얌전하게 떠먹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숟가락 젓가락도 은근 고급이었음

 

고려 물냉면 (12,000원)

이름부터 북한 느낌 나는 고려 물냉면이 나왔습니다. 가격은 만이천원. 평양냉면 세계의 일반적인 가격 책정을 고려해보면 마냥 비싸다고만은 할 수 없는 가격. 물론 다른 음식들과 비교한다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긴 합니다. 이거 먹을바에 뜨끈하게 국밥 두 그릇 때울 수 있기 때문

 

하지만 가성비를 따질 거였으면 냉면을 먹으러오면 안됐겠죠? 다시 냉면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일단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무튀튀한 면 색깔. 함흥냉면이라면 가끔 칡냉면 같은 것도 있지만 보수적인 평양냉면 세계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면 스타일입니다. 

 

고운 빛깔의 냉면이 있으면 이런 칙칙한 색의 냉면도 있어주는 것이 음양의 조화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남북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또 하나 이 냉면에서 반가운 지점은 바로 계란 지단을 올린다는 점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삶은 달걀 반개를 덩그러니 올리는 대신 품이 조금 더 들더라도 계란 지단을 잘게 썰어 올렸습니다. 덕분에 일단 비주얼 점수 +1

 

그 외에도 수육 같은 고기 고명이나 오이, 잣, 무절임 까지 꽤 다채로운 토핑이 올라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보기 이쁜 냉면입니다.

 

예쁜 것을 보면 부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래서 마구 면을 풀어 주었습니다. 아 물론 그러기 전에 한번 주발을 들고 국물 맛을 보았습니다. 

사실 북한식 냉면이라기에 동무밥상이나 남포면옥 스타일의 동치미 육수가 간간하게 들어간 그런 국물을 예상했었는데요, 직접 먹어보니 설눈의 냉면은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육향에 초점을 맞춘 육수입니다. 염도도 결코 낮지 않구요. 기존의 평양냉면 강자라고 불리는 집들, 예컨대 우래옥, 봉피양, 을지면옥 같은 냉면집의 냉면에 익숙하신 분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을 겁니다. 분명 그들 스타일과 어느정도 궤가 다르지만 그렇다고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그런 냉면입니다.

 

면은 전분을 꽤 섞어 쫄깃한 맛이 살아 있도록 제면한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인면옥 스타일의 툭툭 끊기고 입안에서 우적우적 씹히는 굵직한 메밀면을 더욱 선호하는지라 설눈의 면은 그리 인상 깊지 않았습니다. 요런 쫄깃한 면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참고로 강렬한 색과 달리 메밀향이 아주 강한 편은 아닙니다.

 

고명이 켜켜이 올려져 있다보니 있는 줄도 몰랐던 친구들이 하나씩 발견 됩니다. 배도 한 조각 숨어있었고,

 

알고보니 삶은 달걀도 있었던 것. 이미 지단도 올라갔는데 굳이? 싶기도 하지만 뭐 한편으로는 삶은 계란이 없으면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을테니까요. 먹다보면 고명이 참 푸짐해서 만이천원 받을만 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그럴때 바로 육천원짜리 든든한 국밥을 떠올려주면 그런 생각을 즉시 떨칠 수 있습니다.

 

요건 기본으로 두 장 들어있는 소고기 편육. 면 싸먹기 딱 좋은 크기와 두께입니다. 

 

사실 어디 부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육수낼때 썼던 돼지고기가 아닐까 싶네요. 아니라면 머쓱..

 

그리고 닭고기도 있습니다. 육수 끓일 때 빨릴 데로 빨려서 뻣뻣하기 짝이 없으나 국물에 촉촉하게 담궈서 면과 함께 먹으면 씹히는 단백질이 꽤나 즐겁습니다.

 

차진 식감의 면도 계속 먹다보니 매력있는 듯

 

면을 재빨리 다 건져 먹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 마무리합니다. 간간한 국물 끝에 뒤에서 올라오는 은근한 달큰함이 처음부터 있었는데요, 그릇을 비울때쯤 되니까 그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특히 국물안에 들어있던 무절임을 먹고 난 직후에는 언밸런스하게 느껴질 정도로 탁 치고 올라옵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조금은 아쉬웠던 부분.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꽤나 준수한 냉면 한 그릇이었습니다. 우래옥 봉피양을 뛰어넘을 강자의 등장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들러봄직한 그런 냉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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