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향 양꼬치, 왕십리 - 그곳의 변함 없는 중국 요리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5. 13. 08:40
졸업 하고나면 학교 주변에 다시 올 일이 없을 줄만 알았는데요, 이런저런 이유로 은근히 종종 들르게 됩니다. 덕분에 추억의 음식점들을 찾아가게 되네요. 오늘 방문했던 만리향양꼬치도 대학생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 곳입니다. 학교 끝나고 모여 술판을 벌이던 그 중국요리집을 정말 오랜만에 동기들과 함께 다시 들렀습니다. 옛날 생각도 조금 나는 것 같으면서도, 옆 테이블 신입생들의 고성방가를 듣고 있다보니 확실히 이제 왕십리는 제가 속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요. 동기들도 저도 다들 변했지만 변함 없는 건 이 집의 훌륭한 요리 솜씨 뿐. 간만에 들른 추억의 맛집에서 이것저것 시켜먹었던 이야기 입니다.
왕십리 술집 거리에서 시장 쪽으로 빠지는 골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로변에 있는 것은 아니라 찾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왕십리에서 술 좀 마셨다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만한 중국음식점.
가게는 2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게 자체의 인테리어는 허름한 편입니다. 여느 대학가 맛집들처럼요
규모는 중간 정도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수준. 간간히 동아리 회식 장소로도 애용되던 곳입니다.
양꼬치를 필두로 이런저런 중국 요리들을 팔고 있습니다. 짜장면없는 중국음식점의 전형적인 메뉴 구성. 면이나 탕류가 상당히 저렴해서 시켜놓고 먹다보면 기분 좋아져서 소주 콸콸 후 과음으로 시달리던 기억이 새록새록납니다. 물론 이 날은 소주 먹을 생각 없었기에 주문 안 했습니다. 굳이 귀중한 주말에 자발적으로 멸망할 필욘 없잖아요
밑반찬 시리즈들 나옵니다. 제가 제일 좋아했던 건 볶은 땅콩. 짭짤해서 개꾸르
사실 만리향 양꼬치에 와서 양꼬치를 먹었던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방문했으니 왠지 클래식한 걸 먹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가볍게 스무개만 주문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먹기 전 에피타이저 느낌으로 속에 기름칠이나 하겠다는 마인드
대강 올려 놓고 기계가 알아서 굽도록 기다려줍니다.
역시 자동화 기계란 좋은 거시에요. 차분하게 다 익을 때 까지 기다려 줍니다.
양꼬치를 먹는 날이니까 오늘의 주종은 칭따오로 선정. 마케팅의 효과란 어쩔 수 없는 것
이건 서비스로 나온 마파두부. 물론 얼얼한 맛이 있지는 않고, 대신 살짝 매콤하고 전분기 있게 볶아냈습니다. 맥주한잔하면서 숟가락으로 퍼먹기 괜찮았습니다. 일단 공짜면 다 맛있음
인간이 맥주를 마시며 노는 동안 기계는 마저 노동합니다. 일해라 기계
그래도 앞접시 세팅하고 수저 갖다 놓는 것은 수동인 부분. 한 백년쯤 지나면 이것도 기계가 해주지 않을까요. 음식 떠 먹는 것도 기계가 대신 해줬음 좋겠다
기계의 노동력을 소비해 생산해낸 양갈비 꼬치입니다.
꼬치에서 분리해낸 후 양념에 살짝쿵 찍어 먹습니다. 음 양갈비맛. 무난하게 먹을만한 양꼬치입니다.
양갈비꼬치 말고 그냥 양꼬치도 먹을만 합니다. 잡내도 그리 세지 않고 그냥 꼬치고기 먹는 기분. 맥주에 하나씩 빼먹기 딱 좋습니다.
볶음밥이 나왔습니다. 기름에 알차게 볶아낸 삼천오백원짜리 볶음밥. 사실 만리향 양꼬치의 알파이자 오메라라고 할 수 있는 메뉴입니다. 요리류에서 뭐 하나 시킨 담에 볶음밥이랑 함께 먹으면 무조건 게임 셋이거든요.
게다가 그냥 볶음밥만 퍼먹어도 충분히 맛있다는 사실. 진짜 별거 없는 볶음밥이지만 역시 센불에 훅훅 볶아내서 그런지 집에서 해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먼저 주문한 메뉴는 어향육슬입니다. 가늘게 썬 고기를 어향소스에 볶아낸 요리. 어향 소스는 원래 물고기 요리에 사용하는 사천 지방의 소스인데 생선 비린내를 잡기 위해 맛과 향이 강한 편입니다. 특유의 매콤 새콤 달콤한 맛이 생선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에도 어울려 두루 쓰입니다. 예전에 소개해드렸던 어향동고 역시 어향소스를 이용한 요리.
만리향 양꼬치의 어향 소스는 은근히 새콤한 맛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은 탕수육 스러운 느낌도 살짝 나는데, 맛이 강해서 안주용 요리로 딱 적당한 느낌입니다.
어향육슬과 함께 주문했던 것은 볶음면. 살짝 축축하게 볶아졌습니다.
맛 자체는 간간하면서도 식사로 먹기에는 다소 밍밍해서 금방 물릴 수 잇는 맛.
그래서 어향육슬과 볶음면을 과감하게 스까주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럴 요량으로 두 메뉴를 함께 주문 했던 것. 그릇이 작아서 비비는 일이 쉽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비비는 건 제가 아닌 제 옆에 앉아있던 형이었기에 저는 그냥 조용히 사진을 찍어주며 응원했습니다.
왼편에 조금 흘린 것이 살짝 아쉬웠으나, 어차피 제가 비빈 것은 아니기에 감히 쿠사리를 줄 수 없었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기로 했습니다.
맛이 강했던 어향육슬과 살짝 밍밍했던 볶음면이 만나자 완벽한 밸런스가 완성됐습니다. 비비는 과정에서 소스마저 적당히 되직해져 거의 한 냄비에서 볶아져 나온 것만 같은 맛입니다. 성실하게 면과 소스를 비벼준 비빔맨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넓적한 면에 전분기가 가득한 소스가 되직하게 달라붙었습니다. 이걸 파스타의 세계에서는 에멀젼, 만테까레, 유화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소스와 면이 하나가 되는 면아일체의 경지. 그리고 묵직한 소스 맛의 방점을 찍는 탕수육스타일의 새콤함까지. 고오급 음식점의 세련됨은 아니라도 학교앞 중국집의 불량하고 짜릿한 매력 덕택에 그 어떤 중국요리에 견줘도 아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어향육슬과 볶음면을 비벼 먹는 건 사실 처음이지만, 어쩐지 대학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
볶음면을 너무 맛있게 먹다보니 살짝 볶음밥이 남아버렸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는 것이, 이런 상황의 대처법은 수도 없이 학습해왔습니다.
바로 즈란 양고기를 시켜서 밥반찬 삼아 먹는 것. 매콤하게 바싹 볶아낸 양고기. 개인적으로는 만리향 양꼬치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입니다.
매큼한 양념으로 건조하게 볶아낸 양고기에 즈란 특유의 화한 향이 더해지고, 고기를 씹다가 지방부위에서 흘러나온 눅진한 맛까지 혓바닥을 찾아오면 그때만큼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중국음식 먹는 쾌감이 여기에 있구나 싶은 느낌. 이 날 역시 훌륭했습니다.
간만에 들린 추억의 식당에서 요리 몇 가지를 깔끔하게 싹싹 비워냈습니다. 한창 다닐때는 너무 자주 와서 질린다는 생각이 들던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들리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누가보면 졸업한지 30년은 된 줄 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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