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폼, 압구정 로데오 - 여러 번 가도 좋을 태국 요리집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5. 15. 08:38
평소 먹는 한식 말고 독특한 게 땡길 때면 태국 음식 만한 선택지가 없습니다. 단짠 베이스에 새콤하고 매콤한 맛을 적극적으로 가미하는 태국 요리의 짜릿한 매력은 우리 입맛에 생소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새롭습니다. 단짠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태국음식은 한식과 닮아있지만, 다양한 향신료와 신맛을 통해 단짠단짠한 맛을 풀어나간다는 데에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 날은 태국음식이 굉장히 땡기던 날. 까지는 아니었고 그냥 주변에 태국 음식 잘하는 곳이 있다길래 별 고민없이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수준 있는 태국음식을 만났습니다. 신사동에 위치한 태국요리 전문점, 까폼입니다.
까폼은 압구정로데오역 부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초록색 간판으로 멀리서도 잘 보입니다.
가게는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키오스크를 보아하니 최첨단 자동 대기열 시스템도 가동 중인 모양이네요. 저는 일요일 저녁 아주 애매한 시간에 들렀기에 대기 없이 금방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듣기로는 대기도 종종 걸리는 곳이라는 듯
가게 내부는 대강 이런 느낌입니다. 태국에 가보질 못해서 태국스러운 인테리어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철제 식당과 플라스틱 의자의 조합에서 어쩐지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것만도 같았습니다. 부엌 상단에 걸려 있는 부담스런 초상화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이트보드에 메뉴들이 주르륵 적혀있습니다. 가격은 압구정 로데오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합리적인 편. 그래서 둘이 왔지만 메뉴 세 개를 시키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메뉴이름이 현지화가 안돼서 여기 적힌 거만 봐서는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테이블에 앉으면 따로 사진이 있는 메뉴판을 줍니다. 그거 보고 고르면 됨
기본찬은 이런 절임류가 나오는데요, 저는 언제나 그렇듯 손 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먹지는 않더라도 사진은 찍는 것이 참된 블로거의 도리
물은 그냥 물이 아니고 무슨 차 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잘 기억 안 남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되지만,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은 아무래도 태국 출신인 것 같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음식 제대로 할 것만 같은 기대가 올라가는 부분. 하지만 이 역시 고정관념에 선입견이겠지요..
먼저 나온 요리는 팟 카파오 무 쌉입니다. 한국말로 하면 돼지고기 바질 덮밥이 되겠습니다. 방금 구글링해서 알아온건데 태국말로 '팟'은 볶다, '카파오'는 바질, '무'는 돼지고기, '쌉'은 다진, '싸와디캅'은 안녕하세요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좌측에는 흰밥과 반숙 계란후라이를 우측에는 돼지고기 볶음을 내왔습니다. 아주 단순한 구성으로, 고기를 반찬 삼아 밥을 떠 먹으면 되는 요리.
그런데 돼지고기 조리 상태가 상당히 좋습니다. 다진고기를 멀끔하고 잘 생기게 볶아냈습니다. 게다가 거기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은근한 매운 내 까지. 스읍 군침이 돌 수 밖에 없습니다.
밥도 아주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졌습니다.
한 술 떠서 쌀알을 살펴 보니 아마 훌훌 날리는 길쭉한 안남미(인디카)와 우리가 흔히 먹는 끈기있는 한국쌀(자포니카)을 적당히 배합해서 밥을 지은 모양입니다. 밥 전체로 봤을 때는 찰기가 살아 있으나 숟가락으로 뜨다보면 은근히 밥알이 흩어집니다. 진밥과 꼬들밥 중 좌표를 잡자면 꼬들밥에 훨씬 가까운 편. 개인적으로 고슬고슬한 밥을 선호하기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개이득
이렇게 밥을 밑에 놓고 위에 고기를 올려 먹으면 됩니다. 이거 찍으려고 밥 위에다 일일히 고기 집어 올렸음
그냥 대충 먹을 땐 이렇게 슥슥 비벼다가 먹으면 됩니다.
아무튼, 돼지고기는 짭짤함을 중심으로 볶아냈습니다. 반찬 하나가 밥 한 공기를 혼자 이끌고 나가야 하는 만큼 맛에 선이 굵직한 편입니다. 간이 꽤 쎈 편이면서도 동시에 태국 음식 특유의 매콤함이 있어서 고기 양념이 이리저리 연달아 입안을 강타하는데, 되려 그 강렬한 맛들이 부딪히고 섞이면서 묘한 밸런스를 자아냅니다.
자극적인 맛들에 혀가 피로해지는 순간이라면 노른자를 탁 터뜨려 살짝 도움을 받아도 좋습니다. 정말 별거 없이 단순해 보이는 요리지만 다채로운 자극이 끊임없이 입맛을 돋웁니다.
다 먹고 나서는 입가심으로 오이를 먹어주었습니다. 먹을 땐 몰랐는데 고기를 다 먹고 보니 이런 것도 있길래 먹은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맛볼 음식은 만 까이 텃. 한국말로 옮기면 닭껍질 튀김이 되겠습니다.
얼마전 KFC에서 출시하며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었죠. 후라이드 치킨의 엑기스인 닭껍질만 따로 떼어내서 튀겨 먹다니 이건 혁명이다 싶었는데 태국 음식에도 그런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가격도 육천원으로 상당히 저렴한 편.
이거 나오자마자 저는 결심했습니다. 오늘은 맥주를 먹기로.
태국음식 전문점이라서 그런지 흔치 않은 창 생맥주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초점이 아주 약간 흔들렸는데 그래도 사진 속의 피사체가 맥주라는 사실을 알아보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만 흔들렸습니다. ^0^
사실 맥주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다시 닭껍질튀김으로 넘어오겠습니다.
바삭한 튀김옷을 와삭 베어물면 부서진 튀김사이로 닭기름이 주르륵 혀 안쪽으로 흘러 들어 옵니다. 씹으면 씹을 수록 올라오는 고소한 닭기름의 풍미. 그런데 먹다보니 어디선가 먹어봤던 익숙한 맛이 떠오릅니다. 과자 닭다리의 맛이 현현하게 혀에 느껴집니다. 아마 닭다리 과자가 모티브 삼은 맛이 바로 이 닭껍질 튀김이었겠지요. 8살때부터 닭다리 과자를 좋아해왔던 저는 이 날에서야 '진짜'를 만난 것입니다.
아까 돼지고기 덮밥에는 생오이가 있었다면, 닭껍질 튀김에는 이렇게 채썬 생 야채들이 있습니다. 원래 뭐 어떻게 따로 먹는 방식이 있는 것 같기도한데, 태국은 가본적이 없는지라.. 그냥 있는대로 집어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먹은 것은 팟타이입니다. 태국요리를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팟타이는 제가 생각하는 태국 음식의 매력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요리입니다. 단짠을 기반으로 하되, 단순하고 강력하지만 쉽게 물릴 수 있는 단짠의 단점을 신맛, 매운맛, 지방맛 등을 지지않을 정도록 강하게 배치해 버텨내면서 먹는 사람이 그릇을 비울 때 까지 질리지 않도록 합니다. 말은 쉽지만 밸런스가 무너지면 금방 매력을 잃어버리는게 태국음식입니다. 자칫하면 입만 피로해질 수도 있는 것.
이곳의 팟타이 역시 면을 볶은 양념은 단짠 기반의 강렬한 맛을 가지고 있고, 그 맛을 계속 매력적으로 유지해내기 위해 땅콩 가루, 고춧가루, 레몬 같은 것들이 동원됩니다.
저도 일단 레몬부터 짜주고,
가차 없이 섞어 주었습니다. 땅콩과 고춧가루가 면들에게 공평하게 균등분배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근데 비빌때 밑에 이상한 풀쪼가리가 있어서 비비기 힘들었음
아무튼 잘 비벼낸 면은 상당히 중독적입니다. 꾸덕하게 묻은 소스들을 면과 함께 후루룩 빨아들입니다. 가벼운 쌀국수 면 때문에 소스에 비해 그리 부담스럽지 않게 먹힙니다. 그런데 맵찔이인 제게는 살짝 매운 편이기는 했습니다. 땀을 조금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들어있는 새우도 먹고 아주 싹싹 긁어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
이 날 먹은 세 가지 요리 모두 훌륭했습니다. 볶음과 튀김 모두 조리도 훌륭했고 태국 요리의 다채로운 매력 역시 잘 살아 있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여러번 다시 들러서 다른 요리들도 모두 섭렵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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