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고다, 인사동 - 세련된 설렁탕과 육회비빔밥

가만히 생각해보면 국밥을 깔끔한 분위기에서 먹을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습니다. 일상 가까이에 있는 음식이지만 국밥집의 모양은 대부분 비슷비슷합니다. 대충 한 끼 때우고 금방 나가야만 할 것 같은 어수선하고 수더분한 분위기가 대다수이지요. 하동관처럼 비싼 가격을 받는 곰탕 노포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왜 국밥이라는 음식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먹을 수 없는 것일까요. '국밥은 원래 그런 음식'이라는 변명으로 편안치 않은 식사 경험이 항상 정당화 될 수 있는 걸까요.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인사동의 한 국밥집에 들렀다가, 깔끔한 분위기에서 설렁탕과 육회비빔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잘 차려 입은 국밥은 파스타 못지 않게 우아하고 품위있었습니다. 관훈동에 위치한 설렁탕 전문점 안국고다 입니다.

 

인사동 큰 길에 난 주변 골목으로 들어가면 '안국고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지하철 이용시 안국역에서 걸어가면 수월합니다.

 

가게는 한옥 서타일.

 

실내도 모던한 스타일에 한옥스런 디자인을 조금 덧붙였습니다. 깔끔합니다. 외국인 친구들 데려오기에도 괜찮을 듯 합니다.

 

저희는 창가자리에 앉았습니다. 

 

메뉴판은 대강 이렇습니다. 설렁탕과 육회비빔밥이 주로 나간다는 듯. 가격대는 일단 국밥집보다는 조금 더 비싼 편입니다. 물론 설렁탕집으로 한정하면 아주 비싸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소금 후추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찝찝한 공동수저통은 다소 아쉽습니다. 수저 끄트머리에 누구 손이 닿았을지 어떻게 알까요. 특히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국이라면 식기는 따로 제공하는 것이 아무래도 옳지 않나 싶습니다.

 

물은 500미리 생수로 퉁치는데, 시원하게 식혀서 줍니다. 별 거 아닌 디테일이지만 물이 시원하면 일단 기분이 조크든요

 

육회비빔밥(상단) / 설렁탕(하단)

육회비빔밥과 설렁탕을 하나씩 주문했습니다. 

 

기본찬으로는 역시 김치가 빠질 수 없겠습니다. 먹어보니 국밥에 어울리는 시원하고 새큼한 맛입니다.

 

콜라 (2,000원)

캔콜라는 코카콜라 줍니다. 얼음컵은 따로 주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콜라 온도가 기본적으로 시원하게 나오기에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미지근한 콜라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그든요..

 

설렁탕 (10,000원)

우선 설렁탕입니다. 길쭉한 나무 트레이에 담겨 나옵니다. 

 

설렁탕과 고기를 찍어먹을 소스, 그리고 밥 한그릇으로 구성된 세트.

 

설렁탕은 뽀얗게 끓여냈습니다.

 

사골 푹 삶아 고아 낸 듯한 국물입니다. 팔팔 끓지 않는 설렁탕으로 초기 온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조금만 후후 불고 나면 금방 덤벼들 수 있을 수준입니다. 

 

고기는 생각보다 넉넉하게 들어있습니다. 굳이 특을 시키지 않아도 모자르지 않게 먹을 수 있겠습니다. 

 

육수 내느라 힘이 다 빠져버린 고기가 아니라 고명으로 넣기 위해 따로 삶아낸 고기인 듯 합니다. 씹는 맛도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아 마음에 듭니다. 간간히 지방이 붙은 부위도 있는데 국물 맛에 풍부함을 불어 넣습니다. 다만 소고기 냄새가 꽤나 뚜렷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긴 하겠습니다.

 

밥도 고슬고슬하게 잘 지었습니다. 사실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환영입니다.

 

 밥알이 질지 않아 국에 말아 먹기 좋은 스타일. 

 

파는 따로 통을 내줍니다. 취향껏 넣어 먹으면 됩니다.

 

취향껏 넣었습니다.

소금도 직접 간을 맞춰야 합니다. 적정한 수준을 찾기 위해서 뿌리고 맛보고 반복합니다. 물론 한국인이야 요런 자가-간-맞추기 시스템에 익숙하니까 괜찮지만,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참 곤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당초에 국밥이라는 음식에 적당한 염도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냅다 알아서 간을 맞춰 먹으라고 하면 긴가민가할 수 밖에 없겠죠. 아무런 가이드라인도 없이 '취향껏'이라는 단어에 모든 책임을 내던져 버리는 셈입니다.

게다가 국밥 간 맞추는 것 자체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닌 것이, 밥을 말았을 때 전분기 때문에 간이 약해지는 것을 고려해야하고 또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간이 강해지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즉 국밥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있지 않다면 간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한국인이라서 상관없긴함

 

국밥에 들은 고기를 소스에도 찍어먹어보았습니다. 근데 사실 무슨 소스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버리네요..흑흑

 

본격적으로 밥과 함께 먹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설렁탕 자체는 무난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물론 진하고 좋은 국물이기는 하지만, 집에서 사골국 오래 끓여먹는 맛과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의견이었습니다. 물론 그 정도면 충분히 만원만큼의 값어치는 하는 것이지요.

 

대신 고명으로 들어간 두툼하고 부드러운 고기는 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시원한 맛의 깍두기는 다소 단조로울 수 있는 설렁탕에 포인트를 불어 넣습니다.

 

다른 것보다 깔끔한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설렁탕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이겠습니다.

 

육회비빔밥(10,000원)

이번엔 육회비빔밥입니다. 국물과 함께 나왔습니다. 

 

동행자의 아이폰을 빌려 인물모드로도 촬영했습니다. 

 

아래 깔린 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기를 수북히 얹어줍니다.

 

본인 디렉팅에 따라 동행자가 근접샷을 찍었습니다. 영화감독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요 호호

 

한 숟갈 듬뿍 퍼서 맛봅니다. 간장 베이스의 짭짤한 간과 고소한 소고기 육회, 그리고 상추와 부추를 비롯한 야채들이 꽤 잘 어울립니다.

 

크게 퍼먹어도 비린내 없이 꿀떡꿀떡 잘 넘어갑니다. 초장으로 맛을 내지 않은 점이 가장 맘에 듭니다. 덕분에 육회의 감칠맛과 채소의 맛이 비빔밥의 주인공으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고기 양 자체가 많아 육회의 쫄깃한 식감도 두드러지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었습니다.

 

고추장을 청하면 이렇게 따로 내어줍니다.

 

취향에 따라 적당히 덜어 비벼 먹으면 됩니다. 비빔밥에는 고추장이 제 맛이라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잊지 말고 고추장을 받아야겠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육회비빔밥에 좀 더 가까운 맛이 됩니다. 별다른 조리없이 육회와 채소 맛에만 기대다보니 금방 물릴 수 있는 비빔밥에 고추장은 새로운 자극을 불어 넣습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런 식사였습니다. 깔끔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접객 속에서 무난하게 한끼를 때울 수 있었습니다. 설렁탕은 아주 특별한 맛이라고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깔끔한 분위기에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혹여라도 외국인에게 한식 문화를 소개할 일이 있다면 안전한 선택지로 고려해볼 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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