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포차, 당산 - 푸짐한 육사시미와 민물새우탕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4. 23. 08:38
보쌈으로 배를 채우고 가볍게 술 한 잔 더하기 위해 주변 식당을 물색합니다. 일단 배가 부르니 탄수화물 가득한 식사 류는 아웃. 금방 보쌈고기를 먹고 나왔으니 돼지고기 류도 아웃. 오늘 주종은 소주로 정했으니 튀김류도 아웃. 소거법으로 하나 둘 씩 가용 메뉴를 제거해나가다 보니 선택지가 몇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역전포차, 육사시미와 민물새우탕을 세트로 판다는 이야기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방문했습니다.
이름이 역전포차인 만큼 당산역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전이라고 할만큼 역 바로 앞은 아닙니다. 한 2분정도 걸어야 함
여느 포차가 그렇듯 메뉴는 아주 다양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흔히 포차에서 내지 않는 메뉴인 새우탕과 육회를 메인으로 내세운다는 점. 신기한 마음에 두 메뉴가 함께 들어있는 1번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네 명이서 먹을거니 5만원 정도면 안주값으로 합리적인 정도.
가게 내부는 그냥 흔한 포차 스타일이었습니다. 여느 실내 포차가 그렇듯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다 손님도 많아서 상당히 정신이 없습니다.
메뉴를 주문하고나니 바로 깔리는 밑반찬들. 저기 보이는 고추장과 청양고추는 육사시미용, 중앙에 보이는 수제비는 새우탕 용입니다.
그리고 두부와 갯고둥은 기본 반찬. 특별할건 없지만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심심풀이로 두부 한 숟갈, 갯고둥 한 두 개씩 빨아 먹으며 소주 한 잔 하고 있기 좋습니다.
탕보다 먼저나온 것은 육사시미였습니다. 몇 점 나오다 말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푸짐한 양입니다.
전문가는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대강 보기에 고기 상태도 꽤 괜찮습니다.
꽤나 두툼하게 썰었습니다. 씹는 맛이 있겠어요.
사실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그냥 되는대로 막 갖다 찍었습니다.
육사시미가 나오고 나니 갑자기 사장님이 테이블에 난입해서 맛있게 먹는 법을 전수해주고 가셨습니다. 사실 뭐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니고, 청양고추를 양념장에 아주 성실하게 잘 비벼서 (사장님 강조사항) 육사시미 하나에 고추 하나씩 올려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사장님이 대충 섞어주신 건데, 저것보다 더 잘 성실하게 섞어야지 제 맛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사장님이 끝까지 섞어주신 양념장에 들어있는 고추를 육사시미에 올려서 먹기로 했습니다.
고추에 칼칼한 맛과 소고기의 감칠맛이 아니나 다를까 잘 어울립니다.
그래도 육사시미 맛을 제대로 보고 싶어서 양념장 없이도 먹어봤습니다. 차갑지 않은 육회에서는 찰기가 돕니다. 혀에 착착 달라붙는 맛. 미묘하게 살짝 흐르는 비릿한 맛에 씹을수록 나는 소고기 특유의 고소한 감칠맛이 더해지면서 육사시미만의 맛이 완성됩니다. 육회와 달리 더욱 씹을거리가 있어 입안에 고기가 오래 남고 육류의 고소한 맛이 더 강렬합니다.
게다가 쫀쫀한 식감까지 있으니 소주 안주로 제 격입니다. 물론 육사시미만으로는 소주의 강한 맛에 맞추기 역부족이니 안주로 먹을 때는 양념장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념장 뿐만 아니라 고추장에 참기름 섞은 것 같은 것에도 찍어먹어보았습니다. 사실 며칠 지나서 이거 맛이 어땠는지는 약간 아리까리한데, 확실한 건 이게 양념장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다는 것. 그러나 요걸 거의 마지막에야 찍어먹어봐서 뒤늦게 후회했다는 것. 육사시미의 절반 손해봤엇
세트 메뉴 2번타자로 등장한 민물새우탕입니다. 쬐깐한 새우들을 잔뜩 넣어서 국물 맛을 시원하게 낸 요리입니다.
각종 채소류도 들어가있는데 이 탕의 정체성은 역시나 새우에 방점이 찍혀있습니다.
먼저 국물을 떠 맛본 동기들의 증언으로는 컵라면 새우탕 국물을 증폭시킨 맛이라고 하는데요,
말로만 듣고는 살짝 갸우뚱 했는데 저도 한 숟갈 떠서 먹어보니 바로 이해가 됩니다. 새우에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시원한 맛이 강렬하게 농축되어 들어 있습니다. 새우탕 컵라면 먹을때 코끝을 스치고 가던 그 향이 훨씬 진하게 입안으로 퍼집니다. 아아 비록 민물새우지만 이건 바다의 맛
우렁차리만큼 진한 새우 맛은 바로 이 작은 녀석들이 십시일반으로 몸에서 뽑아 모은 육수에서 나오는 것이었군요.
끓이면 끓일 수록 맛은 더 강해지고 향은 더 진해집니다. 소주와 함께라면 탕이 끓을수록 어차피 취해가니 얼큰하고 좋겠지만, 만약 술 없이 먹는다면 금새 물릴지도 모를 맛이겠습니다. 너무 새우 향에만 기대기에 처음 먹을 때의 짜릿함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었습니다.
수제비는 넣어놓고 까먹어서 아주 마지막에야 건져먹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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