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돈, 역삼 - 속전속결 빠르게 구워 먹는 냉동삼겹살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4. 24. 08:30
뜬금없이 시작된 냉동 삼겹살 열풍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듯합니다. 레트로의 기치를 내세운 복고풍의 냉동삼겹살 가게들이 여전히 개업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이죠. 저는 비싼 가격까지 내가며 굳이 얇은 삼겹살을 먹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는데요, 최근 우연히 역삼역 부근에서 저녁을 때울 일이 있어 '랭돈'에 다녀왔습니다. 유우명 블로거이자 피양옥, 랭맥, 청류벽 등의 굵직한 식당을 론칭한 배칠수님의 가게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값이 맛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사실.
비가 주룩주륵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촌스럽게 색을 배합한 간판이 눈에 띕니다. 주류일절이니 대중음식점이니 하는 워딩도 옛스런 분위기를 내기 위함이겠지요.
비도 오고 그래서인지 저녁시간에도 손님이 없습니다. 예상보다 너무 조용해서 조금 뻘쭘했음
가게 내부는 그냥 깔끔한 분위기인 가운데 바닥은 기름기가 잔뜩 끼었는지 미끌미끌합니다.
불판은 이런 전기불판을 씁니다. 냉동삼겹살 굽는데 굳이 숯불을 쓸 필욘 없겠지요.
메뉴는 대강 이렇습니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랭돈이긴한데 여기저기 후기를 종합해본 결과 냉동 삼겹살이 더 맛있다는 의견에 입이 모아지는 듯 합니다. 근데 저는 안 믿고 시그니처인 랭돈부터 시켰습니다
밑반찬이 촤르륵 금새 깔립니다.
우선 고기에 곁들여 먹을 파채와 마늘양념장 그리고 쌈채소들이 있구요
다른 고깃집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분홍소시지부침이 나옵니다. 간만에 보는 반가운 음식
이게 뭐라고 어릴 때는 참 좋아했었는데.. 절대 소시지라고 부를 수 없는 오묘한 맛이지만 오랜만에 먹으니 추억맛에 기분이 좋습니다.
인당 만 천원짜리 시그니처 메뉴인 랭돈입니다. 설명에 전지살 중 구이에 적합한 부위를 골라냈다고 하는데 어쨌든 돼지 앞다리살이라는 뜻.
흰 지방이 자글자글하게 살코기 사이사이에 침투되어있습니다. 저 정도 지방으로 충분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보기에는 이쁩니다.
비주얼적으로는 충분히 합격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맛있게 생겼다는 뜻.
사진찍는 동안 달궈놓은 전기불판에 올려 굽기 시작했습니다.
고기가 얇으니 금방 구워집니다. 대충 몇번 칙칙해서 젓가락으로 거둬서 입으로 가져가 먹는 그런 맛에 얇은 고기를 먹는거죠.
첫점은 파채와 함께했습니다. 고기 자체에 지방이 모자르다는 느낌이 좀 있습니다. 누군가는 담백하다고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지방맛으로 고기를 먹는 제 취향에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살코기의 감칠맛이야 좋았지만 지방의 고소한 맛이 제 입맛에는 약했어요.
어쨌든 고기를 먹을 땐 밥이 필요한 법. 공기밥을 주문했는데 메뉴판에는 없어 가격이 얼마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메뉴판 크기가 모자란 것도 아닌데 왜 누락됐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밥 자체도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밥이 지나치게 질게 되어 밥알이 형체를 잃어버릴 정도로 풀어져있습니다. 물론 진 밥을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지만 이 날의 공기밥 수준은 취향으로 커버될 수 있는 범위에서도 벗어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고기를 반찬 개념으로 먹는 한식 논리에서 주 메뉴인 밥의 상태가 아쉽다면 반찬의 퀄리티가 무슨 의미일까요.
어쨌건 삼겹살 먹방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센 불에 바짝 빠르게 구울수록 맛이 살아납니다. 껍데기를 살려서 정형했기에 쫀득하게 씹는 식감도 있구요.
가볍게 쌈도 싸서 먹어보고,
마늘양념장에 콕 찍어서도 먹어보며, 이런 저런 변주 속에서 지루하지 않게 고기들을 해치웠습니다. 그래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대강 구운 고기 여러장을 젓가락으로 한 번에 우수수 거둬서 한입에 몰아넣고 우걱우걱 씹는 것. 물론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겠습니다.
생각없이 한 번에 두 장 씩 고기를 훅훅 먹어치우다보니 금방 고기가 동나서 냉동삼겹살 2인분을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인당 13,000원 하는 고기이니 상당히 비싼 편.
모르긴 몰라도 양은 아까 꺼 보다 많아보입니다.
판 닦으라고 받은 지방덩어리로 불판을 슥슥 정리해주고,
충분히 달궈진 불판에 냉동삼겹살을 굽습니다.
아 역시 얇아서 빨리 구워집니다. 아주 좋아요
배가 고프니 대강구워서 김처럼 밥을 싸먹습니다. 삼겹살은 아까 전지보다 훨씬 지방맛이 강해서 훨씬 고기 먹는 느낌이 납니다.
제 입맛엔 확실히 이런 기름기 가득한 녀석들이 더 맞아요.
전지살은 담백해서 고기만 먹어도 딱히 부담이 없었다면 삼겹살은 밑반찬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쌈장과 김치, 마늘 그리고 상추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고기 모양 고기들도 알차게 구웠습니다. 비록 존재감 강한 오돌뼈는 모두 발라내야했지만요. 물론 오돌뼈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고, 오돌뼈의 유무가 좋은 고기의 지표가 된다고들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크기의 오돌뼈라면 미리 손질해서 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김치도 조금 구워서 먹었다는 이야기.
계산할때 보니 이렇게 귀여운 돼지 피규어들이 있었습니다. 돼지야 인간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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