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티니, 강남 - 밀라노에서 배달 온 피자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4. 28. 08:35
밀라노에 가면 꼭 먹어봐야한다는 피자, 스폰티니. 저는 밀라노는 물론 이탈리아 근처에도 가볼 일이 없었던지라 그런 피자가 있는 줄은 며칠 전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다 그제서야 알게되었습니다. 여행객들이 밀라노에 들리면 성지순례하듯이 찾아가는 피자 맛집이라는데 최근에는 강남에도 분점을 열었다는 소식. 사실 유명 피자집의 한국 진출 소식만으로는 그닥 구미가 당길 것이 없었으나, 사진 속 피자의 모습이 워낙 독특하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강남을 찾았습니다.
스폰티니는 강남역과 신논현역를 잇는 대로 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시뻘건 색으로 컨셉을 주어서 꽤나 시선을 잡아끕니다.
사람들도 지나다니다 '오 저게 뭐지' 하면서 한번 쯤 시선을 주고 가더라구요. 그래서 사진 찍고 있는 제가 조금 민망했다는 이야기.
스폰티니는 2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빨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됩니다. 하지만 올라가기전에 사진을 안 찍을 수 없게 만드는 깔끔한 디자인. 하지만 아이폰 8로는 색감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흑흑
주방에서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피자를 굽고 썰고 자르고 있습니다.
피자는 인간이 만들고 주문은 로봇이 받는 시스템. 키오스크로 메뉴를 적당히 골라 주문하면 됩니다.
피자 가격은 한 조각에 칠천원에서 만원 사이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한 조각 치고 비싼 것 같지만 막상 피자를 받아보면 가격이 납득가는 크기. 통상적인 피자에 비해 도우가 훨씬 두껍고 조각도 넓어서 한 조각이면 어지간해서 배가 찹니다. 하지만 주문하던 시기에 저는 그 사실을 몰랐고 둘 이서 세 조각을 주문했다가 배터지게 피자를 먹게 되었던 것.
가게 내부는 꽤 넓은 편입니다. 2층 야외 테라스도 운용 중입니다. 제가 갔던 날은 쌀쌀해서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날이 더 풀리고 나면 테라스에서 먹는 것도 운치있을 듯. 가게 평수가 넓은 만큼 테이블 크기도 크고 테이블 간 간격도 넓어서 쾌적하게 이용가능합니다.
밀라노에서 피자가 배달된다는 컨셉.
그동안 사이드바에가서 피클을 좀 담아왔습니다. 물론 저는 안 먹음
대신 로고냅킨도 가져와서 사진을 찍어줍니다.
피자 세 조각을 시켰더니 세 명이서 먹는 줄 아셨던 모양인지 접시 세 개에 포크/나이프도 세 세트를 주셨습니다. 약간 민망했던 부분. 사진으로 보니 그리 커보이지는 않는데 아무튼 크기가 사람 얼굴만합니다. 1인분 1조각이 정량이 맞긴 한듯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피자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 도우가 훨씬 두텁습니다. 피자보다는 이탈리아 빵 중의 하나인 포카치아를 좀 더 닮은 느낌도 납니다. 포카치아에 토핑을 올려먹던 것 역시 피자 일종으로 보는 의견도 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군요.
맥주도 주문했습니다. 피자에 맥주 콤보도 삼겹살에 소주 콤보만큼이나 검증된 조합이기 때문. 먹을까?, 고민하기 전에 습관적으로 주문했습니다.
가장 먼저 맛본 메뉴는 가게 이름과 창립 연도로 이름 지은 스폰티니 1953. 나름 가게에서 시그니처로 미는 메뉴가 아닌가 싶어 주문한 것입니다. 스폰티니 특유의 두툼한 도우위에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올리고, 엔쵸비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엔초비는 한국에서 흔한 식재료가 아니기에 특유의 비릿한 향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메뉴.
참고로 엔초비는 유럽의 생선절임입니다. 멸치나 청어 류의 생선을 손질해 소금과 올리브유에 푹 절인 음식으로 서양에서는 파스타나 피자에 종종 쓰입니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생선 젓갈 쯤 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발효시켜 만드는 음식인 만큼 염도가 강하고 특유의 취가 있는 편.
스폰티니 1953에 올라간 앤초비 역시 염도가 강하고 어느 정도 비린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주 거슬리지는 않는 정도. 확실히 비릿한 냄새가 감돌고 쨍한 염도가 치즈 위로 올라오긴 하지만 불쾌하지 않습니다. 피자 자체에 감칠맛을 더해주며 특유의 풍미로 입맛을 계속 당기게 합니다.
앤초비가 원래 피자에 잘 어울리는 음식인 이유도 있겠지만 스폰티니 피자 특유의 두터운 도우가 강렬한 앤초비 맛을 감싸 안는데 큰 도움이 되었겠죠.
옆으로 눕혀보면 이렇게 두터운 빵이 보입니다. 우리가 기존에 먹어온 그 어떤 피자의 도우보다도 두껍습니다. 도우가 맛있어야 피자가 맛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하는데, 이 정도 도우를 강조한 피자는 처음이에요. 갓 구워내 부드럽고 폭신한 도우가 토마토와 치즈의 맛을 잘 서포트해줍니다.
게다가 도우는 단순히 폭신한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닥 부분도 아주 바삭합니다. 버터의 고소한 향을 머금은 도우 바닥이 튀김을 먹듯 파삭파삭하게 씹힙니다. 베어물때 부드럽다가 윗니와 아랫니가 만나는 순간에 바삭하게 터지는 크런치함이 이 피자의 최대 매력포인트.
제가 먹어본 피자중 이것과 가장 비슷했던 도우는 미국 피자헛에서 1불씩 추가 차지 내고 업그레이드해서 먹던 오리지널 팬 도우. 한국 피자헛에서는 제공하지 않아서 타코와 함께 꿈에만 그리고 있던 음식인데 예상 외로 스폰티니에서 비슷한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개꿀
피자 크러스트도 역시나 빠삭빠삭해서 좋습니다.
이번에는 프로슈토/루꼴라 피자입니다. 돼지 다릿살을 염장한 프로슈토와 살짝 쌉쌀한 맛이 매력적인 루꼴라를 함께 올렸습니다. 피자에서는 워낙 검증된 조합이기도 하지요.
두터운 도우로 멍석을 깔고 프로슈토로 간을 잡으며 루꼴라로 밸런스를 맞추겠다는 논리.
개인적으로는 꽤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만 다른 피자들에 비해서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조각.
스폰티니에서 내는 피자는 크기가 큼직해서 들고 먹기 어려우니, 주방에서 미리 잘라주는데요, 프로슈토는 피자를 자른 후에 올렸는지 안타깝게도 따로 포크로 찢어먹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도대체 피자가 잘린 경계선이 어딘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냥 무작정 칼을 대고 여기저기 쑤셔보며 피자를 분해해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프로슈토가 비교적 잘 찢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먹는데에 있어서 다소 불편합니다.
이번 것은 바질 토마토. 바질소스와 토마토를 피자 위에 올려 냅니다.
알싸한 바질향과 토마토가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개인적으로 이날 먹었던 세 가지 종류의 피자 중에 가장 좋았어요. 비주얼로는 가장 별로였는데 말이죠.
스폰티니의 피자는 꽤 괜찮았습니다. 강남 주변에서 피자 먹을 일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고려해볼만 하겠습니다. 두텁고 버터 향 가득한 도우에 부담스럽지 않게 올라간 토핑들. 미리 잘라주기에 손 더러워 질 일도 없고 의외로 먹고나서 속이 부대끼지도 않아서 가볍게 피맥한잔 하기에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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