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언덕, 신림 - 건강하고 먹기 편한 돌솥산채비빔밥

비빔밥은 한식의 대표주자입니다. 특히 외국인을 대상으로하는 한식 홍보 영상에는 비빔밥이 빠지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빔밥은 한식 세계화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비빔밥은 우리 일상에서 흔한 음식일까요? 생각보다 우리에게 가까운 음식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겹살, 김치찌개 전문점은 많지만 비빔밥 전문점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집에서 냉장고에 남는 재료를 때려 넣고 만들어 먹는 것이라면 몰라도 한국의 외식문화에서 비빔밥은 외딴 존재입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또 생각해보면 밖에서 맛있는 비빔밥을 먹어본 경험 자체도 까마득한 것 같습니다. 훌륭한 비빔밥을 찾아 들른 신림의 '메밀언덕'입니다.

 

신림 양지병원 쪽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메밀 언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름대로 정말 언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객들이 지나가다 들르기에는 다소 뜬금없는 위치입니다. 

 

메밀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지만 의외로 산채보리밥이 훌륭하다는 말에 흥미가 생겨 방문했습니다. 비빔밥이 훌륭하면 나중에 막국수도 한번 먹으러 와보아야겠죠.

 

식당 실내는 가정집을 개조한 느낌인데 꽤나 고즈넉합니다. 식탁 간 간격이 넓어서 주변에 방해받지 않고 편히 식사할 수 있습니다. 흘러간 옛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데 가게 분위기나 메뉴에 참 잘 어울립니다. 

 

메뉴입니다. 청정자연재료를 강조하는 만큼 가격은 꽤 있는 편입니다. 솔직히 가격에 대해서는 불만 없습니다. 좋은 재료를 쓰고 쾌적한 경험을 제공하느라 비용이 든다면 메뉴 가격에 반영해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납득할만큼 퀄리티가 따라주느냐가 문제겠지요.

 

주문을 받고 바로 부엌에서 조리 하십니다. 

 

그간 나오는 따뜻한 메밀차. 메밀의 고소한 맛이 코를 부드럽게 감싸안습니다.

 

메밀이 이렇게 고소한 향을 가진 재료였군요. 언제나 제면된 상태로만 접하니 메밀 자체가 가진 매력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엌에서 음식만드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 홀짝였습니다.

 

돌솥산채보리밥 (12,000원)

주문한 돌솥산채보리밥이 나왔습니다. 말이 보리밥이지 보리가 섞인 비빔밥이라고 보는게 옳겠습니다. 

 

이런 밑반찬들과 함께 나옵니다. 밑반찬 면면을 소개하자면,

 

새큼한 맛 대신 간간한 맛으로 승부하는 물김치도 있고, 

 

고오오급 쌈채소를 썼다고 하시는 샐러드도 있으며,

 

아삭하게 씹힐 때 시원한 맛이 좋은 얼갈이 김치도 있습니다.

 

정갈한 나무 수저까지 준비되는데 비빔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서포터들입니다. 

 

메밀언덕의 비빔밥의 큰 특징은 뻘건 고추장으로 맛을 내지 않는다는 점.

 

고소하게 무친 나물의 간에 전체 요리의 맛을 기댑니다. 일견 절밥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플레이팅도 가게 분위기에 걸맞게 아주 고즈넉합니다.

 

보리밥은 뜨끈한 돌솥과 만나 지글지글 튀겨지는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타고 누룽지가 만들어지는 고소한 향이 올라옵니다. 맛있는 냄새에 슬슬 배가 고파지네요. 아아 마이야르..

 

돌솥자체에 기름기를 한번 둘러 놓았는지 보리밥이 눌어 붙지는 않습니다. 나무 수저로 몇번 슥슥 저어보면 고슬고슬하게 기름으로 코팅된 밥알이 나물 사이를 훑고 지나다니며 비빔밥 치고 비교적 수월하게 비벼집니다. 사실 이름과 달리 비빔밥은 비비기 힘듭니다. 길쭉한 줄기 모양을 하고 있는 나물 재료와 알곡의 모양을 하고 있는 밥알이 쉽게 어우러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각기 다른 물성을 가진 두 가지 재료는 섞이는 과정에서 쉽게 엉키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밥을 계속 치대다가 비빔밥의 주인공이어야 할 밥알들이 상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떡져버린 밥알들 사이에서 양념이 길을 잃고 부유하게 될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구요. 

 

다행히 메밀언덕의 비빔밥에는 줄기 모양 나물의 양이 과하지 않고 기름기가 넉넉해서 슥슥 비비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우선 한 입 떠서 맛보는데, 어째 맛이 완성되어 있는 느낌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간을 배제한 나머지 김치나 밑반찬을 곁들여야지만 맛에 마침표가 찍힐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얼갈이 김치를 함께 먹자 그럴듯한 궁합이 완성됩니다. 부들부들하고 간간한 나물과 함께 아삭하게 씹히는 시원한 얼갈이 김치, 그리고 고소한 보리밥의 맛이 함께 어우러져 흘러갑니다.

 

사실 저는 간이 약한 절밥에도 환장하는 타입인지라 "약간 심심한데 고소한 맛이 좋아서 먹을만은 하네" 하며 대강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사장님 왈 "어 내가 강된장을 안 줬네?"

뭔가 완결되지 않은 것만 같은 맛의 비밀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바로 맛의 핵심을 담당하는 된장이 없었던 것. 이미 30%는 먹어치운 상태였지만 그래도 그제서야라도 된장을 받아 비빔밥에 투하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비벼먹으니 이제는 김치없이도 맛이 살아납니다. 강된장이 들어가고 나니 더 이상 심심한 맛으로 먹는 음식은 아니게되었습니다. 짭쪼름하면서도 감칠맛있는 강된장이 기름기있이 살짝 눌어난 보리밥에 부드럽게 엉겨붙으며 고소한 맛을 극대화합니다. 강된장의 구수한 짠맛이 합세하면서 드디어 끼니식사로서 비빔밥의 맛이 완성됐습니다.

 

중간중간 들어오는 나물은 강된장의 맛을 조율하며 질리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분명히 매력적인 강된장이고 자연스레 숟가락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기는 하는데, 마지막 숟가락쯤 되니까 괜히 왠지 모르게 아까 된장 넣기 전의 삼삼했던 그 맛이 살짝 그립기도 합니다. 

 

어쨌든 깔끔하게 잘 먹어치웠습니다. 이 정도면 사먹는 비빔밥으로서도 만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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