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주 산동 칼국수, 양재 - 미슐랭 받은 손칼국수

양재역 부근에 미슐랭 빕 구르망을 4년 연속 받은 칼국수 집이 있다는 이야기가 저를 자극했습니다. 한국 매체에서 선정하는 칼국수 맛집이야 수도 없이 들어서 감흥없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의 관광객을 주 독자로 삼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선정한 칼국수 맛집이라니 한 번쯤 찾아가 맛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희 집에서 양재도 칼국수 한 그릇만 먹으러 가기에는 먼 거리.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찾아간 '임병주 산동 손칼국수'입니다.

 

임병주 산동 손 칼국수는 양재역에서 대략 5~7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도를 보고 따라가면 금방 찾을 수 있는 위치. 게다가 흔치 않은 초록색 간판이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못 찾기도 어렵습니다.

 

여기 있는 비닐 통로는 보통 대기줄이 생겼을때 쓰는 듯. 가게 정면으로도 입장할 수 있습니다. 

 

88년에 개업했으니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노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업력.

비닐 한켠에는 4년 연속으로 받은 미슐랭 딱지가 주르르 붙어있습니다. 2017년부터 서울에서 미쉐린 등재가 시작되었으니 시작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빕 구르망을 유지해온 것. 참고로 빕 구르망은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미슐랭이 부여하는 칭호입니다. 물론 빕 구르망이나 별을 받았다고 무조건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외국인의 관점에서 외국인에게 추천하는 식당*인만큼 현지인 입장에서 흥미롭게 살펴볼만 합니다.

 

* 어쩌면 외국인의 관점에서 추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미슐랭은 선정단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기에) 최소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추천하는 식당

 

가격은 최근 들어 꾸준히 올라왔다고 합니다. 확실히 칼국수 치고 저렴한 가격은 아니네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어릴 적부터 칼국수를 친숙하게 먹으며 자라왔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갖고 있는 맛있는 칼국수의 기준에는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죠. 하지만 과연 어릴 적 칼국수 먹던 추억 없는 사람이 추천하는 칼국수는 어떤 칼국수일까요. 그리고 그에게 추천받아 처음 칼국수를 먹어보러 온 사람에게 칼국수란 음식은 어떻게 다가올까요.

 

철푸덕 좌식 뿐만 아니라 테이블 석도 조금 마련되어 있긴 합니다.

아마 칼국수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맛있는 칼국수는, 할머니가 끓여주던 칼국수를 먹고 자란 사람이 생각하는 맛있는 칼국수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는 않을까요. 밀가루 반죽처럼 치대면 치댈수록 단단해지는 궁금증들이 이 날 식사하는 제 곁에 머물렀습니다.

 

어쨌든 좌식에 앉으면 다리 저리고 허리 아픔

한국에 처음 놀러온 관광객의 눈으로 이 식사 경험을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그런 관광객들에게는 신발 벗고 올라가는 이런 좌식 식탁 조차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뿐만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식문화의 모든 것이 이국적으로 다가오겠죠. 심지어 이렇게 항아리에서 꺼내 먹는 김치조차도 신기할 겁니다.

 

왕만두 (9,000원)
구천원짜리 왕만두는 일곱알이 나옵니다.

먼저 나온 건 칼국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로 큼지막하게 쪄낸 왕만두.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이 쪼글쪼글하게 못생긴 만두의 비주얼이 흥미로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간이 강하지 않지만 간장을 찍어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은 평범한 만두. 만두 자체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의 요리다 보니 한국식 왕만두를 처음 먹는 이들도 그리 거부감을 가질 것 같진 않아요.

다만 불어서 젓가락질에도 쉽사리 찢어지는 만두피는 개선의 여지가 있어보입니다. 

 

우선 칼국수에 딸려나오는 밥입니다. 아마 칼국수를 먹고 나서 말아 먹으라는 듯 합니다. 사실 칼국수집에서 주는 기본 공기밥은 한국에서 이십몇년 살아온 제게도 조금 낯서네요. 

 

손칼국수 (9,000원)

칼국수가 나왔습니다. 뜨끈한 육수에서 조개 향이 훅 올라옵니다.

 

이 멀건 국물에 어떤 맛이 숨어 있을지 우리는 먹어봤으니까 이미 알고 있지요.

 

하지만 이 음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이 뿌연 국물에서 어떤 맛이 날지 호기심에 어서 수저를 치켜 들고 싶을까요 아니면 낯섦 때문에 경계하느라 요리조리 음식을 더 살펴보고 싶을까요.

 

고명으로 김이 올라가 있습니다. 김 역시 관광객들에게는 낯선 음식입니다. 김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거무죽죽한 비닐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기 올라간거람." 하고 수저로 걷어내려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 특유의 향과 감칠맛이 조개 국물을 얼마나 생생하게 만들어주는지 아직 그들은 모르잖아요.

 

국물 칼국수 치곤 그나마 덜 뜨거운 편

국물을 우선 떠서 맛봅니다. 조개 육수의 풍부한 감칠맛이 목젖에 와서 닿습니다. 감칠맛은 요령없이 반복되면 금방 질리지만 처음 혀에 닿을 때는 언제나 직관적으로 맛있게 다가옵니다. 생존에 필수인 단백질의 맛이 곧 감칠맛이기에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맛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그만큼 이 감칠맛 넘치는 국물은 어느 나라에서 온 누가 먹어도 맛있을 것이란거죠.

 

이번에는 면을 한 번 뒤적여봤습니다. 우선 양이 그릇 한 가득입니다. 칼국수 사리 추가도 무료라는데 사실 이 정도 양이면 굳이 사리를 추가할 필요가 없겠어요.

 

면 굵기도 익힘도 제 입맛에는 딱 맞았습니다. 씹히는 맛이 있어서 먹기 좋아요

면은 지구상 어느 문화에서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 형태입니다. 아마 칼국수는 처음 봤더라도 국수를 처음 본 관광객은 없을 거에요. 

다만 칼국수 면은 그들이 흔히 먹던 면들과는 궤가 다를지도 모릅니다. 칼국수란 기본적으로 수분이 많이 들어간 다가수 면. 만약 수분 적은 저가수 면인 파스타를 흔히 먹어오던 사람이라면 칼국수의 이 쫄깃하고 탄성있는 면 맛이 새롭고 흥미로울 겁니다. 새로운 음식을 접하는 것 역시 미식의 재미 중 하나겠지요.

 

요런 쬐깐한 조개들도 손수 발라서 먹어보고,

 

시원한 김치와 칼국수를 번갈아가며 먹으며 김치의 참맛을 깨달을 수도 있겠습니다. 참고로 이 집 김치 맛있지만 은근히 고추의 땡한 매운 맛이 혀에 꽤 오래 남는 편입니다. 저 같은 맵찔이들은 주의하시길.

 

칼국수를 먹다가 만두도 함께 곁들이며, 한국식 콤보를 경험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밥은 국물에 말아먹기 좋게 고슬고슬하게 지은 찬 밥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은 밥심이라는데 국수에 밥도 말아 먹어보는거죠. 근데 사실 이건 저도 자주 안해서.. 졸지에 여행 온 느낌.

 

국물 온도가 낮아지자 생각보다 염도가 쨍하게 다가옵니다.

그렇게 미슐랭 가이드의 추천을 따라 찾아온 낯선 식당에서 칼국수란 음식을 먹고 난 외국인들의 평은 어땠을까요. 저희야 어릴 적부터 먹고 자라온 음식이니 "괜찮은 칼국수네" 하며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또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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