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노 라멘, 합정 - 뽀얀 닭 육수로 만든 진득한 토리파이탄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4. 20. 08:40
보통 진한 국물의 라멘하면 돈코츠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돼지뼈를 꾸리꾸리한 냄새가 나도록 진득하게 우려낸 큐슈 스타일의 라멘의 거칠고도 농후한 타입의 국물이 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라멘의 세계는 깊고도 넓어서, 돼지뼈로만 진한 국물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닭으로도 아주 눅진한 타입의 육수를 뽑아내죠. 그런 류의 라멘을 토리 파이탄이라고 부릅니다. 한국말로 대강 번역하면 닭 백탕 정도가 되겠습니다. 뿌옇다 못해 하얗게 뽑아낸 닭 육수에서는 농후함과 더불어 크리미한 풍미가 있습니다. 거친 돈코츠 육수와는 다른 느낌의 진함을 가지고 있죠. 한국에도 이런 토리 파이탄으로 유명한 라멘집이 몇 군데 있는데요, 오늘 소개 드릴 곳은 미슐랭 빕 구르망까지 받은 바 있는 '오레노 라멘'입니다.
오레노 라멘은 합정역 근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역에 내려서도 조금 걸어가야하는 편. 가게도 좁고 인기가 많아 웨이팅이 항상 있는 편이라고 합니다. 저는 기다리기 싫어서 저녁시간이 거의 끝날때쯤 방문했습니다.
너무 늦게 갔는지 날이 어두워서 사진에 보이는게 별로 없는데, 아무튼 오레노 라멘은 2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게 바깥에 위치한 무인자판기에서 미리 결제하고 안으로 입장하면 됩니다. 거의 라스트 오더에 가까운 시간대였는데도 여전히 가게에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식권을 뽑고도 대략 3분 쯤 대기하다 입장.
메뉴 설명 판도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바로 서론에서도 설명드렸던 토리 파이탄. 닭 육수로 진하고 고소하게 뽑은 크리미한 육수가 일품입니다.
기다리면서 할게 없어서 찍었던 간판입니다.
그건 그거고, 가게 실내 사진을 하나도 못 찍었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았습니다. 굳이 말로나마 조금 설명하자면, 카운터석과 테이블 몇개로 이루어진 조그만 식당입니다. 조용하거나 깔끔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라멘 한 끼 때우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라멘은 금새 나왔습니다. 뽀얀 국물위로 후추를 뿌려 주십니다.
가까이서 찍으니 정중앙에 올라간 달걀이 은근히 시선을 끄는 듯.
그래서 살짝 떨어져서도 사진을 찍어보았던 것입니다.
라멘 본격적으로 먹기 전에 맥주도 한 컷 찍어보았습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라멘에 곁들이기 딱 좋은 양입니다. 다만 가격은 라멘에 곁들이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음
이제 본격적으로 라멘을 돌파해봅니다. 스푼으로 국물부터 살짝 뜨는데 색에서 묵직한 기운이 확 느껴집니다. 딱봐도 진해보이는 국물.
실제로 마셔보니 역시 진합니다. 돼지뼈의 야성적이고 거칠은 진함과 다르게 크리미하고 고소한 진함이 입안으로 전해집니다. 한켠으로 느끼하지만 또 동시에 다가오는 감칠맛이 계속 스푼을 뜨게 만듭니다.
면은 돈코츠에 주로 쓰이는 얇은 세면이 나옵니다. 익힘 정도를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 기본으로 나온 익힘도 좋았습니다. 얇은 면 특유의 꼬독꼬독하게 씹히는 식감이 좋았습니다. 참고로 면은 가게에서 직접 숙성시키는 듯.
고명으로 나온 목이버섯과 파도 국물에 꽤 잘 어울립니다. 특히 요 목이 버섯의 오독오독한 식감은 면과도 잘 어울리는 편.
챠슈는 수비드로 저온으로 조리한 듯한 닭가슴살 차슈가 나옵니다. 부드럽고 차진 닭고기의 식감. 일견 햄을 먹는 것 같기도 한데 라멘에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이 부드러운 닭가슴살 식감은 정말 언제 먹어도 너무 행복한 것..
통째로 들어간 맛달걀(아지타마고)입니다. 간도 괜찮고 특히 노른자 익힘정도가 완벽했습니다.
몰캉몰캉한 흰자를 씹으면 터질듯이 흘러나오는 노른자. '과연 라멘 맛과 어울리는가'와는 별개로 달걀 자체의 완성도가 정말 좋습니다. 다만 노른자를 일단 입안에 한번 코팅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 국물이 좀 더 느끼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함께 했던 동행자는 김치를 부탁드렸습니다. 김치는 그냥 김치였습니다.
이건 동행자가 주문한 카라빠이탄입니다. 토리 파이탄과 기본적인 구성은 비슷한 가운데 매운맛을 한 큰 술 추가했습니다.
처음 받았을때는, 크리미한 맛을 위해 낸 거품에 가려 색이 그리 빨갛지는 않지만,
조금 먹다보면 이렇게 속안에 들어있던 시뻘건 국물이 고개를 쳐듭니다.
맵찔이인 제게는 꽤 매운 맛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젓가락 못 훔쳐먹었던 것입니다. 뒷맛에서 혀를 끌어당기는 매운맛이 매력적이긴 했습니다. 동행자 평가론 최근 먹었던 라멘 중에선 가장 맛있었다고.
생맥을 먹다보니 계속 하얀 거품띠가 생깁니다. 예전에 이걸 엔젤링이라 부르면서 좋은 맥주의 상징처럼 광고하던 회사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사실 그런 것까진 잘 모르겠고 제가 몇 번에 맥주를 나눠마셨는지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띠가 5개인 걸 보니 이 날은 다섯번에 나눠서 맥주를 마셨던 모양. 특히 첫 번째와 네 번째에 잔뜩 들이켰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면은 다 건져먹었는데 국물이 남아서 밥을 주문하려 했으나 하필 밥이 다 떨어진 상태. 그래서 그냥 면 추가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하얀 접시에 정갈하게 담겨온 추가 면. 의외로 차슈와 고명까지 함께 추가해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실 차슈 아껴먹고 있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국물에 투하한 후
마저 맛있게 먹었습니다.
추가한 면은 처음에 나왔던 면보다 훨씬 익힘이 단단합니다. 제가 딱 좋아하는 익힘도로 나왔다는 것. 씹히는 식감에 꼬독꼬독 뿐만 아니라 약간의 쫄깃함까지 추가되어 먹는 재미가 더 컸습니다. 물론 개취인 것입니다.
라이트한 국물은 아니지만, 계속 국물 끝에서 달려나오는 감칠맛에 푹 빠져 마지막 국물까지 그릇에 입을 대고 드링킹해 마무리했습니다. 꽤나 만족스러웠던 라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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