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나무집 닭갈비, 춘천 - 알쏭달쏭 닭갈비

맛집 블로그를 하면서 난감한 상황 중 하나는 남들이 다 맛있다고 하는 집을 찾았는데, 음식 맛이 영 기대같지 않을 때입니다. 제 취향이 보통의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는건지, 아니면 그날따라 재료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건지 그도 아니라면 다른 변수가 작용해서 맛이 평소보다 못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제 취향에 음식이 맞지 않아서 맛이 없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냥 제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고 적으면 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입 모아 좋다고 하는 곳에는 보통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쓸거리가 많아서 포스팅에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식사에 대한 저만의 기준과 맛에 대한 취향을 확고하게 세워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죠.

문제는 재료 상태나 다른 변수 때문에 맛이 없는 경우입니다. 첫 방문이라면 원래 이 맛이 맞는건지 아닌건지 한참을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사진은 찍는데 도무지 여기에 무슨 말을 붙여야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괜한 이야기를 했다 식당에 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곤 합니다. 또 반대로 제 글을 보고 찾아간 분들이 낭패를 볼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식당들은 대부분 포스팅하지 않곤 했습니다.

이쯤에서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날 찾은 춘천의 '통나무집 닭갈비'는 다소 애매한 식당이었습니다. 원래 이 맛이 맞는지 아닌지 도무지 판단이 어려운 곳이었죠. 포스팅하지 말까도 싶었지만, 또 어쩌면 그 고민의 순간을 솔직하게 적어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나무집 닭갈비'는 소양강댐과 춘천 시내를 잇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샘밭막국수와도 그리 멀지 않은 위치

본관에 별관은 물론 거리 곳곳에 내놓은 분점까지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간판도 으리으리한것이 웅장합니다. 

 

입장한 곳이 본관인지 별관인지 신관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가운데 하나 확실한 것은 1층은 공사 중이었단 사실. 저희는 3층으로 안내 받았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찍은 메뉴판

 

올라가서 받은 진짜 메뉴판.

독특하게 닭내장이 메뉴에 있어 주문해보려했으나 이미 매진이라는 이야기에 닭갈비만 2인분을 주문했습니다. 

 

닭갈비가 구워질 철판입니다.

 

닭갈비 (22,000원, 2인분)

2인분 주문하자마자 직원분이 오셔서 닭갈비를 후딱 올려놓고 갑니다. 잘 되는 집 직원 특유의 시크한 태도

 

좀 더 친절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한테만 불친절한 것 같지는 않아서 참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공평한 불친절의 법칙입니다. 욕쟁이 할머니가 고소당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아무튼 겉으로 봤을때 딱히 특별한 점은 없는 철판 닭갈비입니다. 숱하게 서울에서 봐온 닭갈비들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밑반찬으로 김치국물이 나옵니다. 시원한 김치국물이 언제나 그렇듯 짜릿한 맛

 

직원 분이 틈틈히 와서 몇 번씩 철판을 저어주고 갑니다.

 

서서히 익어가는 닭갈비의 모습

 

이것은 동행자의 카메라가 담은 닭갈비의 모습입니다.

 

동동주 (5,000원)

원래 철판 닭갈비란 철판에 올려놓고 나서도 다 익는데까지 족히 20분은 걸리는 음식. 그 심심한 틈을 참지 못하고 동동주를 한 병 주문했습니다. 1리터짜리 옥수수 동동주가 나옵니다.

 

단맛이 강하지 않고 옥수수의 고소한 향이 잘 살아 있어 꽤 먹을만합니다. 곡주 특유의 청량감은 살아 있는데 크게 달지 않아서 달달하고 자극적인 양념을 쓰는 한식에 나름 어울리는 술이었습니다.

 

칠부능선을 넘은 듯한 닭갈비 상태. 아직은 양념이 다소 흥건해서 좀만 더 익으면 될 듯한데요

 

그때 갑자기 직원 분의 먹어도 된다는 싸인이 떨어집니다. 

 

생각보다 대기시간이 줄어들어 기분은 일단 좋았습니다. 

 

한점 들어 맛을 보려는데 어째 양념이 닭갈비에 제대로 흡착하지 못한 느낌이 듭니다. 입에 넣고 씹어보니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합니다. 닭고기는 탱글하게 익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양념과 제대로 어우러지지는 못하는 듯하군요.

입안에서 양념맛과 닭고기 맛이 따로 놉니다. 양념도 분명 맛있는 스타일인데 어딘가 흐리멍텅하고 맹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나저나 그와 별개로 떡은 굉장히 잘 익었습니다.

 

아무래도 좀 더 볶아서 양념을 졸여야 했던게 아닌가 싶어서 양념이 졸아들때까지 기다렸다 먹어봤지만 여전히 밍밍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양념을 청해서 더 넣고 다시 볶았습니다.

 

간은 강해졌지만 양념이 여전히 닭고기와 따로 놉니다. 달달하고 짭짤한 맛 기반에 살짝 매콤한 기운을 얹어 낸 닭갈비 양념은 분명 매력적인데 닭고기와 맛이 조화롭지 못하고 따로 떨어져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애매합니다.

 

쌈을 싸먹어봐도 그 애매함은 도무지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쌈채소 덕에 맛의 초점이 분산되어서 덜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양념이 붕떠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불이 약했던 걸까요. 애당초에 센불에 훅 볶았어야 했던 걸 실수로 중불에 볶아주신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맛있는 닭갈비의 기준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맛있는 닭갈비의 기준과는 조금 다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주변 테이블에서는 다들 맛있게 먹고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제가 꼽는 최고의 철판 닭갈비는 용산에 위치한 오근내 닭갈비인데요, 그곳과 비교했을때 차이는 양념맛보다는 철판에서 볶아내는 스타일에서 발생하는 느낌입니다. 양념과 닭고기가 완전히 한 요리로 느껴지는 오근내와 달리 통나무집의 닭갈비는 양념맛이 닭고기를 다 씹기전에 먼저 휘발되어 버리는 느낌이랄까요.

 

뭐 어쨌든 먹을건 먹어야지요. 볶음밥 주문했습니다.

 

볶음밥 (2,000원, 1인분)

1인분치고 양이 꽤 많은 듯합니다. 직원분이 와서 훅훅 볶아주고 쿨하게 퇴장합니다.

 

꼬들꼬들해질때까지 잠시 대기하다가,

 

한숟갈 떠서 먹습니다. 이번에는 양념맛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훅 들어옵니다. 전형적인 단짠 스타일의 닭갈비 양념. 칼칼한 카레향 비슷한 것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미 배는 어느정도 부른 상태였지만 저도 모르는 새에 목안이 들큰해질때까지 볶음밥을 푹푹 퍼먹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날 붕뜬 듯한 애매한 닭갈비 맛은 양념 문제가 아니었던 듯합니다. 다음에 와서 다시 먹어보면 또 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는 하지만, 다시 들르기에 춘천은 너무 멀고 닭갈비집은 많습니다. 닭갈비는 다소 아쉬웠지만 매력적인 볶음밥 덕분에 나쁘지 않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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