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김밥, 성북동 - 납득 가능한 김밥 가격에 대하여

김밥은 무조건 저렴해야하는 음식일까요. 물론 가벼운 재료로 간단하게 싼 김밥이 비싸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김밥 속으로 좋은 재료를 쓰고 완성도를 높인다면 가격도 응당 그에 맞춰 올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김밥은 저렴한 음식이다'라는 틀에 갇혀서 김밥이란 음식이 가진 발전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가격을 이삼천원 수준으로 제한하면 김밥에 쓸 수 있는 재료는 극히 제한될 수 밖에 없거든요. 물론 제 아무리 금박지를 발라 김밥을 싸봤자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들이니, 결국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얼마나 납득가능한 맛을 내느냐가 되겠습니다.

오늘은 김밥 한 줄에 7,000원에서 10,000원 사이를 받는 성북동의 호랑이김밥에 방문했습니다. 먹어보고 나니 개인적으로는 그럴듯하다는 의견이었는데요, 사실 사람마다 비싸다고 느끼는 기준치가 다르니 만원의 값어치를 한다고 감히 단언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김밥 한 줄에 만원은 너무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

 

'호랑이 김밥'은 한성대입구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게 내부는 그리 넓지 않고, 먹고 갈 수 있는 좌석도 거의 없습니다. 포장 주문을 주로 받는 듯 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그나마 테이블 하나에서만 가능했던 매장 식사도 일시 중단한 상태.

 

호랑이 김밥의 메뉴는 대강 이렇습니다. 대부분 칠천원에서 만원 사이에 김밥 가격들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사천원짜리 채소김밥도 있는데 이게 아마 우리가 흔히 김밥천국에서 먹는 스타일의 김밥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는 전복 톳나물 김밥과 박고지 김밥을 한 줄 씩 주문했습니다. 

 

물이랑 음료수랑 과자는 편의점에서 구매

매장 내 식사가 안되니 인근 공원에서 먹기로 합니다. 사실 말이 인근 공원이지 거의 20분은 등산했음

 

위가 박고지 김밥 아래가 전복 톳나물 김밥입니다. 김밥 크기는 꽤 두툼하고 큰 편입니다. 강호동이 아니고서야 한 줄이면 식사 대용으로 가능하겠습니다.

 

간단하게 찍어먹을 양념장도 줍니다. 아마 겨자 간장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안 찍어 먹어봐서 사실 확실하진 않음

 

기본으로 내어주는 수정과입니다. 원래 이런가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밍밍했습니다. 디저트로 내주는 것치고는 단맛도 전혀 없고 그냥 생수 대용 정도의 느낌만 들었습니다.

 

좌측에 풀떼기가 조금 보이는 것이 전복 톳나물 김밥이고 우측에 풀떼기 안보이는게 박고지김밥입니다.

 

전복 톳나물 김밥 (10,000원)

일단 전복 톳나물 김밥부터 봅니다. 전복이 들어갔으니 역시 만원이나 하는군요.

 

동행자가 손수 디테일 샷을 찍어주었습니다.

 

이제 맛봅니다. 한복판에 큼지막하게 박힌 전복이 눈길을 잡는군요. 첫 조각이라 이때는 몰랐는데 먹다보니 이 조각에 들어있던 전복이 특출나게 컸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흑

 

김밥안에는 전복을 비롯해, 톳나물, 당근, 우엉 그리고 새큼한 맛을 내는 오이초절임이 들어있습니다. 밥이 깔아놓은 밑바탕 위에 톳나물과 우엉, 당근이 전체적으로 짭짤한 맛으로 간을 잡고 전복이 식감을 담당하며 마지막으로 오이초절임이 신맛으로 김밥 맛의 포인트를 찍습니다.

 

각 조각마다 전복이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은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톳나물의 오독오독한 식감과 전복의 쫄깃한 식감의 대조도 좋고 중간중간 느껴지는 계란의 부드러운 맛도 김밥과 잘 어우러집니다.

 

우리가 흔히 먹던 김밥에 비해 밥이 적고 재료 비중이 높은 스타일. 확실히 속재료에 스포트라이트를 밀어주는 느낌입니다.

 

박고지 김밥 (7,000원)

이번엔 박고지 김밥입니다.

 

이번에도 동행자가 클로즈업해서 한 장 찍어주었습니다.

 

김밥 12시 방향에 보이는 갈색 나물이 박고지로, 박의 과육을 말려 간장, 설탕에 졸인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간뾰라고 불리며, 스시집에서 흔히 나오는 간뾰마끼가 바로 이 박고지 김밥. 

호랑이김밥에서는 계란과 오이초절임과 함께 밥에 말아냈습니다.

 

운반 과정에 살짝 문제가 있었는지 한쪽으로 쏠린 모양이 되어버렸습니다. 계란기운에 김이 살짝 녹아버려서 먹기 힘든 피스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빨리 먹어야 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맛 자체는 달달함에 크게 좌표가 찍혀있습니다. 박고지는 단단하면서도 무른, 아삭함을 뺀 단무지같은 식감이 꽤 특이해서 매력적인데, 다만 워낙 들큰한 맛이 강력해서 다른 모든 맛을 압도해버리는 느낌이 강합니다. 물론 매실청으로 낸 단맛인지라 불량한 맛은 아니고, 달달한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스타일. 개인적으로 식사가 달달한 것을 그닥 선호하지 않아서 다소 아쉽긴 했습니다. 그래도 식감이 재밌기도하고, 전복 김밥과 번갈아 먹으면 나름 밸런스가 맞아서 즐겁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먹다보니 생각보다 배가 불러옵니다. 원래 소풍온 느낌으로 김밥먹고나면 과자도 먹을까 싶었는데 배불러서 그냥 김밥만 먹고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아무튼 제 입맛에는 전복김밥이 더 맛있었읍니다. 

 

재료에 훨씬 힘을 준 스타일의 김밥이었습니다. 김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여태 흔히 먹어왔던 김밥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른 느낌의 음식이라는 인상. 김밥이라 생각하고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다른 형태의 새로운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일본식 김밥인 후토마끼의 가격을 보고 비싸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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