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가의 막걸리집, 이수 - 다양하게 맛보는 막걸리와 전통주

한국 주류 시장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술이 있습니다. 희석식 소주가 워낙 저렴하다보니 새로운 선택지들로 눈을 돌리기 어려울 뿐이죠. 주류에 투자하는 금액의 심적 마지노선을 조금만 높여도 꽤나 다양한 주류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전통주에 눈을 돌린다면 깜짝 놀라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술이 한국에 있었다니요. 

그런 다양한 주류들을 골라 맛보기 좋은 술집이 있다는 소식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이수역 부근에 위치한 전통주 전문점 '정작가의 막걸리집'입니다.

 

정작가의 막걸리집은 이수역 14번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딱히 간판이랄게 없어서 대강 보고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슨 사정때문에 간판이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가게 앞에서 한참을 기웃거릴 뻔 했습니다.

 

나갈때 보니까 가게 앞에 배너에 상호가 적혀있기는 하더라구요. 너무 작아서 눈에 안들어 오긴 하지만요

 

참고로 여기 맞은편에는 작은 규모의 1호점이 있습니다. 역시나 눈에 들어오는 간판이 없어서 기웃기웃해야지만 가게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구조. 

 

저희는 이날 2호점으로 입장했습니다. 작은 1호점에 비해 2호점은 규모가 꽤 큽니다. 가게 내부는 모던한 느낌의 막걸리집 스타일로 인테리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빈 막걸리 병으로 가게 곳곳을 채워놓았습니다. 메뉴 기다리면서 은근히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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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은 원고지 컨셉. 메뉴도 많고 술도 많아서 양이 방대합니다.

 

테이블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메뉴를 주문하고 나니 기본 안주로 미역국과 고추절임 비슷한게 나왔습니다. 미역국은 그냥 미역국맛

 

이건 고추를 된장소스에 적당히 버무려낸 느낌인데, 짭짤하면서도 묘하게 단맛도 있고 또 고추의 쌉쌀한 맛도 살아있어서 에피타이저로 괜찮았습니다. 

 

사랑할때 (10,000원, 12%)

우선 술이 먼저나왔습니다. 사과로 만든 과실주인 사랑할때 12도 짜리. 12도와 20도 짜리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왠지 내일 숙취없이 깔끔하게 먹고 싶은 마음에 12도짜리를 먼저 시킨 것입니다.

 

사과로 만든 술인 만큼 사과 향이 어느 정도 감돕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소 인위적인 단맛이 쨍하게 술잔을 지배합니다. 술이 지나간 목구멍으로 쨍한 단맛의 여운이 남아 잠시 텁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봐줄만한 정도입니다. 알코올스런 술맛은 그리 강하지 않은 편입니다. 매화수 상위호환 느낌. 개인적으로 단맛이 강한 과실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임에도 사랑할때는 그런대로 먹을만 했습니다.

 

순대크림스튜 (19,000원)

수많은 안주 선택지 중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고른 순대크림스튜입니다. 선정 사유는 메인메뉴 맨 위에 적혀있었기 때문

 

크림소스에 당면순대가 폭 담겨있습니다. 삼천원 추가하면 파스타면도 말아주는데 저희는 그냥 순대만 먹기로 했습니다.

 

순대야 그냥 당면 순대인지라 그닥 특별하지 않지만, 그래도 크림소스가 꽤 훌륭합니다.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느끼하지 않도록 살짝 매콤한 향을 뒷맛에 배치해두었습니다. 솔직히 막걸리와 어울리는 안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계속 입맛을 당겼던 것은 사실.

 

생각보다 소스 양이 꽤 많은데 다행히도 농도가 되직해서 안주삼아 푹푹 떠먹기 좋습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한강 국물 스타일의 크림소스는 아니었다는 것

 

보물찾기 하듯이 숨어있는 베이컨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입니다. 

 

달달한 사랑할때와 함께 한 스푼 두 스푼 떠먹다보니 어느새 금방 바닥을 드러내는데, 예상보다는 양이 많았습니다. 금방 다먹고 다른 안주 시키려고 했는데 순대주제에 꽤 오래 버틴 것입니다.

 

그치만 어림도 없지. 순식간에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바로 다른 안주를 주문했습니다.

 

호랑이배꼽 (12,000원)

그러면서 이번에는 막걸리를 주문합니다. 평택 출신의 호랑이 배꼽이라는 이름의 막걸리. 옆 테이블에서 먹는 걸 봤는데 술잔이 귀엽길래 저희도 따라 주문해본 것입니다. 

 

넘모 귀여운 것

호랑이 배꼽 막걸리는 은은하고 부드럽게 다가오는 단맛에 장점이 있습니다. 마셔보면 바나나 향 같은 것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 풍미가 매력적입니다. 사실 우리가 시중에서 자주 접하는 천원대 막걸리와는 결이 상당히 다른 막걸리이긴 합니다. 새큼하거나 달달하거나 그런 맛이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대신 구수한 곡물향 같은 것이 조용하게 다가옵니다. 바꿔말하면 맹맹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그러니까 다소 무맛에 가까운 막걸리라는 것. 막걸리 잘 아는 척하고 싶을 때 "혹시 호랑이 배꼽 드셔보셨어요? 그 코끝을 감도는 은은한 곡물향이 제 스타일이더라구요" 라고 하기 딱 좋은 막걸리입니다. 참고로 저의 취향에도 딱 맞는 막걸리더라구요 호호(진짜로 맛있게 먹음)

 

아무튼 이번에 시킨 안주는 감자전입니다. 감자전을 시켰는데 뜬금없이 샐러드가 나와서 당황했으나 알고보니 감자전을 시키면 원래 나오는 샐러드라고 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메뉴를 받아들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발사믹 소스로 버무린 샐러드였습니다. 

 

샐러드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홀짝이고 있으니 이런 거대한 받침대가 들어옵니다. 이 위로 감자전 접시를 올려줄 모양

 

감자전 (19,000원)

오 생각보다 큽니다. 둘이 오면 이 안주 하나만 먹어도 충분히 배부를듯한 느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감자전 하나만 시킬 껄 그랬던 것입니다.

 

게다가 곧 직원 분이 오셔서 치즈를 갈아주십니다. 

 

듬뿍 올려주신 치즈를 이렇게 감자전 전체에 펼쳐서 먹으면 되는 시스템

 

뭐가 어찌됐든 양이 푸짐하니 뭔가 마음이 풍족해지는 느낌입니다.

 

감자전은 앞뒤로 바삭하게 부쳐냈습니다. 특히 끄트머리 빠삭빠삭해서 맛있음

 

피자 짜르듯이 잘라가서 먹기도하고

 

그냥 대충 먹기도 했습니다. 감자전 자체는 간이 그리 강하지 않은 편입니다. 고로 요것만 먹으면 금방 질린다는 것.

하지만 안주의 맛이 강하지 않다는 것은 술 자체의 맛을 더 세심히 즐기기에도 용이하다는 것. 다양한 막걸리와 함께 먹기에 그만이겠습니다.

 

간장소스도 있긴 했습니다. 

 

복순도가 (22,000원)

마지막으로 고른 막걸리는 겁나 비싼 이만이천원짜리 복순도가 입니다. 탄산감이 강해 별도로 흔들지 않아도 막걸리 뚜껑을 따면 침전물이 탄산을 타고 피어올라 자동으로 섞이는데 그 모습이 꽤나 영롱합니다. 직원분이 직접 따주시느라 민망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특유의 탄산감 때문에 샴페인에도 견줄만한 막걸리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따라보면, 콜라를 따르는 듯 탄산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옵니다.

 

복순도가의 맛 자체는 새콤한 맛이 주가 되고 그 뒤를 단맛이 받쳐주는 형태. 샴페인과 밀키스, 사이다를 조금씩 섞어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도수도 별로 높지 않은데다 맛 자체도 부담감 없어 누구든 맛있게 먹을만한 막걸리. 가격대만 조금 낮았더라면 정말 대중적으로 사랑 받았을 뻔 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날 먹은 술 중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마지막엔 빈 병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어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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