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메리, 인사동 - 신개념 편의점에서 저렴하게 즐기는 라면과 만두

몇 년 전 쯤, 소셜미디어에서 '요괴라면'이 핫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요괴라면'은 봉골레맛, 떡볶이맛, 크림맛과 같이 독특한 맛 컨셉과 원색을 이용한 파격적인 포장디자인의 봉지라면으로, 당시 SNS 감성에 딱 맞아 떨어졌었는지 한창 불티나게 팔렸더랬죠. 사실 당시에 저는 괜히 요괴라면에 반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내실 없이 컨셉과 디자인 만으로 승부한다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심지어 먹어보지도 않고 혼자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아마 그때 한창 소셜미디어에 부정적던터라, SNS를 적극 활용하는 그들의 행보가 맘에 안 들었었나봐요. 원래 미운 사람이 하는건 옳든 그르든 다 미워보이잖아요

어쨌든 '요괴라면'을 탄생시킨 옥토끼프로젝트가 최근 새로운 개념의 편의점 브랜드 '고잉메리'를 런칭했습니다. 지금까지 종각, 인사동, 을지로에 매장을 세 곳 오픈했는데, 저는 인사동에 들렀다가 보이길래 즉흥적으로 방문해보았습니다. 기대 반 의구심 반으로 가게문을 열어 젖혔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요괴라면'때문에 제가 갖고 있던 부정적 인식이 모조리 불식될 정도로 아주 만족했다는 것. 

 

고잉메리 인사동점은 '안녕 인사동' 내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안녕 인사동'은 2019년 말에 오픈한 문화공간인데 상당히 잘 되어 있습니다. 건물도 예쁘고 재밌는 상점들도 많이 입점해있어 구경할만합니다. 낡은 듯한 인사동의 이미지를 불식시킬만한 모던하고 깔끔한 새 건물입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괜히 여행 온 느낌도 나고 재밌습니다.

아무튼 '고잉메리'도 안녕 인사동 내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마 2층에 있었던 듯.

 

'감성' 편의점이라는 문구에서 살짝 불안함을 느꼈으나 다행히 봐주기 힘든 인스타그램식 '감성'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감성이란 수식이 왜 들어간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프리미엄 분식점은 매장과 꽤나 잘 어울리는 수식 같습니다. 그런데 고잉메리는 기존의 편의점이나 분식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컨셉의 매장이 아니긴 합니다. 편의점과 분식점, 두 개념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느낌이라고 하는게 그나마 쉽겠습니다.

 

가게 바깥에 이렇게 메뉴판이 나와있습니다. 분식점처럼 메뉴가 상당히 다양하면서 가격도 저렴한 편입니다. 게다가 술까지 판매하니 분식점 상위호환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가게 내부에 입장하면 우선 식품류를 잔뜩 진열해 놓은 매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요 부분은 편의점의 컨셉을 차용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라면, 과자, 냉동, 술 심지어 과일까지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냄비도 팔고 있어요. 

 

서두에 적었던 '요괴라면'은 이렇게 생긴 라면입니다. 시퍼런 색으로 포장해놓았으니 라면치고 파격적이기는 하죠. 제가 이따 먹을 라면 메뉴도 이 라면으로 끓인 것입니다. 봉지로 살 때 가격은 아마 천오백원쯤 했던듯.

 

냉장고에도 다양한 제품들이 들어있습니다. 낭비없이 요리 한 번에 쓸 만큼 소분해 놓은 채소류도 있고,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고등어 캔이나 크림치즈 같은 것들도 있습니다. 일단 확실히 동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제품들이 많아요. 

 

이렇게 귀요미 사과들도 있길래 한 봉지 구매해보았습니다. 사두었다가 나중에 사과 먹고 싶을 때 먹으려고 했는데, 집에 갈때 까지 사과 먹고 싶은 때가 없어서 결국 저는 못 먹었습니다. 결국 집에 가서 먹어봤다는 동행자 말로는 그냥 사과맛이라고 합니다. 

 

술도 그냥 소주나 맥주를 갖다 놓지는 않았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브랜드들이 입점해있습니다.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편. 예전에 '단단'에서 먹어본 적 있는 서울의 밤도 있네요. 해골바가지 모양 상표가 붙어있는 녀석은 콜라보 상품으로 17도짜리 서울의 밤이라고 합니다.

 

냉동 식품들도 냉동고에 들어있습니다. 다들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상품들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됩니다. 솔직히 들어올때만 해도 뭘 살 생각은 없었는데 자꾸 하나 둘 씩 손에 집게 되더라구요. 

 

한켠에는 오락기들도 있습니다. 근데 한 판에 오백원이라 비싸서 못함

 

계산과 음식 주문은 이렇게 카운터에서 하면 됩니다. 저희는 라면과 만두를 가볍게 먹어볼 예정. 

 

매장 내부는 넓직하고 깔끔합니다. 혼술하기도 괜찮은 구조. 실제로 혼술하시는 분도 꽤 있었습니다.

 

역시나 로고 냅킨은 놓치지 않고 찍어주었습니다.

 

서울 마티니 (3,900원, 잔 당)

한 잔에 삼천구백원하는 서울 마티니가 먼저 나왔습니다. 진 대신 서울의 밤 베이스로 만든 마티니입니다. 

 

참고로 올리브 안에 씨 들어있음

칵테일 치고 가격도 저렴한데 나름 올리브까지 나오면서 구색마저 갖췄습니다. 맛은.. 솔직히 그냥 그랬음. 사실 서울의 밤 자체가 그닥 제 스타일의 술은 아니더라구요. 매실주로 만든 증류주인데 매실의 애매한 단맛이 요령없이 올라오는 느낌입니다. 그 향이 제 취향에는 그렇게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삼천구백원짜리에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되는 것입니다

 

개념만두 새우바질페스토 (4,500원, 좌측) / 요괴라면 봉골레맛 (4,500원)

술에 이어 곧 나온 만두와 라면입니다. 칵테일에 이어 음식도 큰 트레이에 나와서 테이블이 모자릅니다. 이럴거면 술과 음식을 한 트레이에 주는게 나았을 뻔 했겠습니다. 아무튼 두 요리 모두 앞서 매대에서 봤던 제품들로 요리한 것입니다. 이 메뉴들 뿐만 아니라 고잉메리의 대부분 메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벼운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어쨌든 기구를 제대로 갖춘 주방에서 나온 요리인 만큼 조리 자체는 좋습니다.

재료 손질부터 시작하는 전문 요리점보다는 음식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 있겠지만 가격적인 면에서 훨씬 메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물론 요리에서 제품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맛으로만 따진다면 어지간한 식당보다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을 듯. 

 

아마 이 봉골레라면도 제품으로 나온 요괴라면에 바지락을 넣고 끓인 것이겠지요.

 

사천오백원에 이 정도라면 꽤 훌륭합니다. 여기가 학생식당도 아니고 임대표 비싼 인사동이라는 걸 감안하면요

 

국물 자체도 아주 좋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먹을만 합니다. 조개 맛 나고 라면 스프 맛 나고 뭐 그렇습니다.

 

면발 역시 그냥 라면이긴 해요. 하지만 사천오백원에 지나친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도둑놈 심보

 

그런데 만두는 정말 좋았습니다. 새우와 바질 향을 넣은 만두인데 의외로 맛이 괜찮습니다. 

 

새우야 만두에서 종종 보지만, 바질을 넣은 게 킥입니다. 여태 냉동만두 계의 최고존엄은 비비고인줄만 알았는데 요거도 꽤 괜찮은 듯. 무엇보다 이거 만두 조리를 기가 막히게 해놓았습니다. 바삭바삭 크런치하게 씹히는 만두피. 요런 조리는 아마 집에서 따라하기 어렵겠습니다.

 

아무튼 만두와 라면을 마티니와 함께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기대 없이 들어온지라 만족감이 좀 더 크네요. 사실 다른 메뉴들 중에 재밌어보이는게 많았는데 또 다른 데서 술을 먹어야해서 더 주문하지 못해 다소 아쉬웠습니다. 뭐 다음 기회에 다시 오면 되겠습니다.

 

오 먹다가 조개 사진도 찍었던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컨셉의 매장인지라 옥토끼프로젝트와 고잉메리에 관한 이런저런 인터뷰를 찾아봤습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고잉메리는 광고 플랫폼으로 작동하면서 고객이 아닌 기업에게 이익을 얻는 구조라고 합니다. 다시말해 고객을 바라보는 관점이 기존 식당과는 다르다는 것이겠죠. 고객으로부터 최대한 마진을 남기려는 대신 고잉메리는 각종 제품의 쇼케이스 역할을 하고 기업에게 그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니 매장 운영의 초점은 객단가 상승이 아닌 고객 경험 증진에 맞춰지게 되겠지요.

그 과정에서 고객은 단순 수입원이 아니라 만족시켜야 할 존재가 될 겁니다. 이 구조 속에서 가장 먼저 이득을 보는 건 아마도 고객이 되겠지요. 옥토끼프로젝트의 이 새로운 사업 실험이 성공일지 실패일지는 지켜보아야 알 일이겠지만, 어쨌든 객의 입장에서 반가운 시도인 것만은 확실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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