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룡산, 대치동 - 해장에 최적화된 함흥 음식들

언젠가 통일이 되면 전국 팔도를 돌면서 각 지역의 향토음식을 맛보고 싶습니다. 각 지역마다 문화, 기후, 환경에 맞게 특색있는 음식문화를 발전시켜왔겠지요. 서울과 경상도의 음식이 다르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음식이 각기 다르듯, 이북 지역 역시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갖고 있을 겁니다. 각 지방을 돌면서 그곳만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를 통해 그 지역의 삶을 엿보는 것은 저 같은 식도락가에게 큰 즐거움입니다. 그러니 통일을 기다릴 수 밖에요.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오늘 제가 방문한 곳은 함흥음식을 전문으로 내는 대치동의 '반룡산'입니다. 함흥냉면을 제외하면 함흥음식을 접할 기회가 흔하지 않은데요, 반룡산에서 가릿국밥과 녹말국수를 먹어볼 수 있었습니다. 

 

'반룡산'은 선릉역과 삼성역 중간 부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포스코 사거리에서 멀지 않은 언덕배기 골목을 오르다보면 자주색 간판을 금방 만날 수 있습니다. '반룡산'은 함흥에 위치한 산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메뉴는 대략 이렇습니다. 대표메뉴는 가릿국밥, 함흥식녹말국수, 회냉면 등

 

코로나 여파에 늦은 점심 시간에 방문인지라 가게에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내 분위기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평범한 음식점스타일.

 

공동수저통을 사용하지만 수저는 개별 포장되어 있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부분

 

기본찬으로 김치 2종과 깻잎, 어묵이 나옵니다. 둘이 먹기에 생각보다 넉넉한 양. 앞으로 나올 음식들이 담백한 만큼 밑반찬들은 간이 어느 정도 있는 편입니다. 깻잎이 꽤 맛있어 자주 손이 갑니다. 

 

수저를 올려 놓을 종이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일단 위생적인 면에서는 굉장히 맘에 듭니다. 

 

가릿국밥 (10,000원)

먼저 나온 것은 가릿국밥입니다. 갈비라는 뜻의 '가리'에서 이름이 유래했는데, 막상 갈비는 국물에서 찾을 수 없고 양지 찢은 것이 들어갔습니다.

 

일종의 소고기국밥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소고기 외에도 무, 선지, 두부 등이 들어갔고, 국물 맛은 전반적으로 담백하고 시원해서 아침식사나 해장으로 딱 알맞을 듯 합니다. 밥알에서 전분이 흘러나와 혼탁해지기 전에 먼저 국물부터 충분히 즐깁니다.

 

선지와 두부는 조금 큰 크기로 깍둑 썰어 넣었습니다. 둘 다 질긴 물성을 가진 재료는 아니기에 부피가 커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습니다. 선지와 두부 모두 맛이 크게 튀지 않고 감칠맛 있는 국물에 잘 어우러집니다. 

 

밥알도 소고기와 함께 퍼먹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고깃국물이었습니다. 

 

함흥식녹말국수 (12,000원)

이번에는 녹말국수를 먹습니다. 북한에서는 농마국수라고 불리는 녹말국수는 이름풀이 그대로 녹말, 즉 전분으로 만든 국수입니다. 추운 지방인 함경도에서는 이 녹말국수를 차갑게도 먹기도 했는데, 이것이 실향민을 따라 남한으로 넘어와 우리가 먹는 함흥냉면의 모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녹말국수는 함흥냉면의 전신이 되는 음식입니다.

 

반룡산의 녹말국수는 온면입니다. 소고기 육수 베이스에 오이, 무채 등이 국수와 함께 들어갑니다. 

 

전반적으로 새큼한 맛이 돌면서 냉면의 뉘앙스를 품고 있습니다. 독특하니 먹어보지 못한 맛이면서도, 마냥 낯설지는 않은 맛. 매력있습니다. 

 

전분으로 뽑은 면은 설겅설겅한 식감을 냅니다. 확실히 냉면 국수 느낌이 강하군요. 잔치국수와 비슷한 느낌으로 부담스럽지 않고 깔끔하게 들어갑니다. 다만 따듯한 국물 속에서 면이 빨리 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단점

 

왕만두 (5,000원, 반접시)

만두도 반 접시 주문했습니다. 

 

큼지막하군요. 

 

속은 두부와 고기, 야채로 든든하게 차있습니다. 삼삼한 간의 먹기 좋은 이북식 만두. 

 

전반적으로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식사들이었습니다. 다음 방문 때는 요리도 몇 가지 맛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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