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각도, 논현동 - 탱글한 숯불 닭갈비와 쫄깃한 닭안창살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1. 1. 27. 08:27
영동시장에 방어를 먹으러갔다가 오후 6시부터 일찌감치 재료 소진이란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쓸쓸히 발걸음을 돌리고,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오는 날씨에 우산을 붙잡고 방황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버린 상황. 방어 먹을 생각에 부풀어 있던 기대감이 바람빠진 탱탱볼처럼 추욱 처지고, 이제는 방어가 아니면 뭘 먹어도 즐겁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그냥 눈 앞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골라잡아 들어갔습니다. 그냥 아무거나 먹고 술이나 먹자. 어차피 배에 들어가면 똥이 되는 것은 다 같지 않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들어간 이 집의 닭갈비는 의외로 꽤 맛있었고, 그 결과 다시 텐션을 올려 즐겁게 흥청흥청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영동시장에 위치한 닭 특수부위/닭갈비 전문점 팔각도입니다.
팔각도는 영동시장 먹거리 골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로 언제나 바글바글한 거리. 대강 찾아본 결과 팔각도는 논현 이외에도 대략 5개 정도의 지점을 더 갖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요즈음 들어 본격적으로 매장 수를 늘려나가고 있는 비교적 신생 브랜드.
가게 내부는 대략 이렇습니다. 길쭉한 스타일로 안쪽에도 자리가 좀 더 마련되어 있습니다.
메뉴는 대략 이렇습니다. 가격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편. 특히 메인 메뉴인 닭갈비는 가성비가 나쁘지 않아보입니다.
테이블 위에는 이렇게 팔각형 모양의 판이 올라가 있습니다. 이래서 가게 이름이 팔각도였던 것.
잠시 기다리면 팔각형 가장자리를 따라 반찬들이 주르륵 깔립니다. 근데 솔직히 굳이 이 걸리적거리는 팔각형 판을 써야할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괜히 앞접시 놓을 자리만 방해해서 불편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집에 대한 기대치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나 기획을 앞세우는 식당들 중에 음식 맛이 좋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
게다가 로고 냅킨에 이런 식의 문구까지 쓰여 있으니 기대감이 팍 식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일품진로가 준비되어 있길래 바로 주문했습니다.
다만 얼음은 정수기 얼음을 준다는 점
1인분당 구천구백원하는 숯불 닭갈비를 2인분 주문했습니다. 어느정도 철판을 미리 달궈놓고, 주방에서 미리 초벌해온 닭갈비를 잘라서 올려줍니다.
일단 비주얼부터 탐스럽습니다. 닭갈비는 잘린 단면에 살짝 핑크빛이 돌 정도로 익혀 내주는데, 테이블의 불판에서 잠시 구우면 금방 먹을 수 있습니다.
탱글탱글한 다리살들의 모습. 튀긴 닭다리가 맛있듯 숯불에 초벌해온 닭다리도 역시나 맛있겠지요.
아 참고로 닭 올리기 전에 불판을 달구면서는 김을 구워줍니다. 갑자기 생각남
아무튼 구워진 닭갈비를 맛봅니다. 어느정도 기본 간이 되어 있어 다른 양념없이 그냥 먹어도 괜찮습니다. 닭다리살 자체의 촉촉한 식감과 닭고기의 감칠맛이 잘 살아있습니다.
그래도 소금 살짝 찍어서 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닭맛을 즐길 수 있는 방법
준비된 양념 소스에도 살짝 찍어 먹어봅니다. 빨간 소스를 찍었는데 사실 좀 매운 편입니다. 소스 뿐만 아니라 밑반찬 전체의 간이 상당히 자극적인 편이고 매운 맛 역시 강합니다. 개인적으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달달한 마늘 소스도 있었는데 이 역시 제 입맛은 아니었습니다. 달고 시큼하고 뻔한 맛.
저는 그냥 김 싸서 소금 살짝 찍어 먹거나,
백김치에 살짝 싸서 먹는 것이 가장 좋더라구요. 특히 백김치가 닭기름의 느끼함을 삭 잡아주니 궁합이 괜찮은 편입니다.
확실히 계속 먹다보니 살짝 물리는 것도 사실.
구운 꽈리고추로 반전을 꾀해봤으나 너무 쓰기만 해서 실패.
뼈다구에 붙은 살도 보너스도 함께 나옵니다. 뜯어먹기는 귀찮지만 그래도 버릴 수는 없으니 열심히 뜯어먹었습니다.
닭갈비로 일단 배를 채웠으니 안주를 주문해봅니다. 닭 특수부위가 몇 가지 준비되어 있는데, 목살이나 연골은 종종 먹어봤으니 비교적 생소한 안창살을 주문했습니다. 닭 내장을 둘러싸고 있는 횡경막 부근의 부위인듯 합니다. 고추장 양념이 되어 나옵니다.
안창살은 그물 그릴에 굽습니다. 직접 구워야하는데 기름기가 있는 부위라 그런지 은근 난이도가 있습니다. 불쇼를 원치 않는다면 연탄불 바로 위에서 굽는 것은 자제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그냥 적당히 익힌 후 계속 뒤적거리며 구웠습니다.
구우면 이렇게 익습니다. 고추장 양념이 쫄깃한 식감의 닭 안창살과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처음엔 단 맛이 너무 강한듯 싶지만 씹을수록 올라오는 불향과 닭맛에 어우러져 결국에는 밸런스가 맞습니다.
적당히 질겅이는 식감 덕에 술 안주로도 상당히 괜찮겠습니다.
하지만 김과 먹을때가 가장 빛나는 안창살이었습니다.
탄수화물 없이 고기만 먹었더니 포만감이 부족해 라면을 주문했습니다.
게와 새우가 통째로 들어간 라면인데, 면이 처음부터 충분히 익어서 나옵니다. 그말인즉 타이밍을 잠깐만 놓쳐도 면이 다 불어버린다는 것.
면의 식감이 흐물흐물해지는 것도 아쉽지만, 면이 불고나면 국물 맛 역시 혼탁해집니다.
아 라면 한개만 시킬껄.. 하지만 이제 와서 해봐야 늦은 후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우는 동행자에게 양보했다는 훈훈한 미담으로 마무리합니다. 원래 제가 새우 잘 안 먹는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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