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집 고추장주물럭, 서초동 - 아쉬울 것 없는 제육볶음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4. 9. 08:38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있게 되다보니, 식에 대한 고민이 많아집니다. 누군가에겐 식사라는 것이 단순히 연료 충전의 의미에서 멈추겠지만 제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동력이자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이란 것은 자유로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닐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침은 출근하느라 거르고, 점심은 가까운 곳에서 대충 때우고, 퇴근한 저녁엔 피곤해서 음식을 찾아 먼길 떠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와중에 맛있는 음식을 찾으려 노력하고자 합니다. 우선은 일터 근처에 있는 식당부터 돌아다녀봐야겠지요. 오늘은 퇴근 후에 잠시 들러 제육볶음으로 식사했습니다. 서초동 부근에 위치한 '종가집 고추장 주물럭' 입니다.
간판은 크고 강렬합니다. 멀리서 봐도 잘 읽힐만큼 강렬한 간판. 스스로의 존재 목적을 제대로 구현한 간판입니다.
길거리에도 이런 간판이 하나 또 달려있습니다. 이 부근 식당들의 특징인듯. 점심시간 주변을 지나다니는 직장인들의 눈길을 끌어당겨야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내는 테이블석 반 그리고 철푸덕 좌식 반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저는 테이블에 혼자 앉았습니다. 가게의 평균 연령은 꽤 높은 편이었습니다. 덕분에 옆 테이블에서 정모하시는 할아버지들의 정치평론 현장을 직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모자 제꺼 아님
메뉴는 대강 이렇습니다. 저는 혼자왔으니까 고기를 구울 수도 없고 탕을 먹을 수도 없어 제육고추장을 먹기로 했습니다.
공용수저통에 들어있었지만 그래도 숟가락은 개별 포장 되어있습니다. 한국 식문화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반가운 포인트. 누구 손이 닿았는지도 모를 수저에 입을 대면 기분이 찝찝하잖아요.. 물론 젓가락은 무방비상태에 노출되어있었지만 그래도 숟가락이라도 안전한게 어디인가 싶습니다.
칠천원 짜리 메뉴라도 나올 것은 다 나옵니다 고등어로 추정되는 생선조림과 배추김치, 깍두기 그리고 깻잎까지 나옵니다. 찬은 날마다 바뀌는 모양.
밥은 흑미밥 나옵니다. 훌륭하지는 않지만 온장고 밥치고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기대를 버리고 나면 뭐든 먹을만 해지는 것입니다.
장국도 하나 나옵니다. 생각보다 쨍하게 짠맛인데, 오히려 다른 음식들이 그리 자극적이지 않아서 식사 전체에서 보았을때는 입을 환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보조로서 이 정도 자극적인 맛은 충분히 환영할만 합니다.
보조반찬으로 생선조림이 나와서 놀랐습니다. 기껏해야 계란말이나 마카로니샐러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선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물론 주메뉴가 아니니까 맛에 대한 큰 기대는 할 필요 없겠죠. 과도하게 익혔는지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서 살이 퍽퍽하고 단단합니다. 그래도 먹을만은 했습니다.
배추김치는 익지 않은 버전이 나옵니다. 며칠 전 신숙에서 인상 깊은 묵은 지를 먹었었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인상 깊은 새 김치를 먹네요. 배추의 시원한 단맛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양념도 배추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었습니다.
메인메뉴인 제육고추장이 나왔습니다.
돼지고기를 콩나물, 양파와 함께 볶아냈습니다.
물기 없이 건조하게 볶아낸 것이 기본 이상은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선 큼지막하게 한 젓가락 집어 먹어봤습니다. 양념은 지나치게 달거나 맵지 않고, 짭짤한 맛이 제육 양념의 맛을 주도합니다. 양념이 밸런스를 유지할수 있도록 맵고 단 맛은 보조 바퀴의 역할에서 머무릅니다. 덕분에 먹으면서 쉽게 물리지 않습니다.
제 입맛에 맞는 음식들, 특히 한식 중에 제 입맛에 맞았던 것들의 특징은 요리의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았다는 점입니다. 달고, 짜고, 맵고, 시고, 어느 한 극단에 쏠려있지 않고, 두 세 가지 맛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동시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좋습니다. 그래야지만 한 두 숟갈만에 입이 피로해지지 않습니다. 첫 숟갈에 자극적인 맛에 눈이 번쩍 뜨이더라도 그 이후가 고통스럽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습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이곳의 제육은 꽤 괜찮습니다.
단맛은 양파를 비롯한 야채에 많이 기댑니다. 식감이 살아있도록 볶은 양파에서는 매운 맛이 빠지면서 단맛이 살아납니다. 고기는 뻑뻑하지 않고 부드럽게 조리되었습니다. 지방부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기름진 고소한 맛이 양념에 배어들었습니다. 이 돼지기름의 풍미가 복합적인 맛을 내는 제육 양념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고기 잡내는 없고 대신 뒷맛에 약재 비슷한 맛이 콤콤하게 납니다. 뭔지는 모르겠으나 양념 마지막을 깔끔하게 끊어주는 맛.
깍뚜기는 배추김치와 달리 푹 익었습니다. 깍두기 역시 훌륭합니다. 원래 밑반찬으로 나오는 절임류에 거의 손을 안 대는 제가 계속 집어 먹었으니, 기본적으로 김치가 훌륭한 집.
마지막까지 만족스럽게 잘 먹었습니다. 저녁 한 끼 식사로 아쉬움 없었습니다. 굳이 멀리서 찾아올 이유는 없겠지만, 이 주변에서 한 끼 때울 일이 있다면 훌륭한 선택지가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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