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뜨, 신용산 - 사나이 울리는 베트남의 매운맛
- 비정기 간행물/고메 투어
- 2020. 3. 16. 08:36
베트남! 했을 때 제가 바로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는 바로 고추입니다. 언제인가 동네 술집에서 치즈불닭을 먹을 때 거기 들어 있던 베트남 고추가 너무 매워 고생한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매운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새끼 손가락 한마디를 세로로 쪼개놓은 작은 크기의 검붉은 고추였는데, 처음 씹었을 때는 종이 박스같은 식감 뿐이었습니다. 그냥 쓴 맛이 조금 도는 것도 같다가 튿어진 고추껍질에서 튀어나온 씨알갱이들이 혀 위를 조금 구르는 것도 같다가, 이거 뭐 맵다 말 뿐이지 직접 먹어보니 아무것도 아니구만 하하, 하고 자만하는 순간 혀의 양쪽 사이드 날개에서부터 불타는 듯한 고통이 시작됩니다. 이건 맵다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사실은 아무 말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혓바닥이 너무 아파서 말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농담이 아니고 저는 그 날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원래 눈물샘이 마른 편이라 1년에 한 번정도 밖에 울지 않는 저로서는 예정에 없던 눈물을 흘리게 된 것입니다. 타들어가는 혓바닥을 보며 내가 이걸 왜 먹었을까 자책해보지만 그래도 이미 한 번 씹어버린 고추를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나이 울리는 베트남 고추의 매운맛이었습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꺼내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어쨌든 오늘 방문했던 식당은 신용산 역에 위치한 '효뜨'입니다. 앞서 말한 베트남 고추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매콤하고 칼칼한 베트남 음식을 내는 가게입니다.
신용산역 쪽에서 지도어플을 따라가다보면 이런 효뜨 간판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간판 디자인만 봐서는 한 30년 내공의 노포일듯만 한데, 실제로는 오픈한지 그리 오래된 곳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마 2019년도에 개업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물론 사장님한테 직접 들은 것은 아니라 정확한 정보는 아닙니다.
식당은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야외 자리에 테라스까지 씁니다. 좌석 관점에서 봤을 때 굉장히 하이브리드형 식당
1층에는 이렇게 자리가 있습니다.
2층에도 이렇게 자리가 있구요. 사실 2층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좌석이 더 준비되어있습니다. 제가 앉을 곳은 아닌지라 거기까지 가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앉은 자리에서 찍을 수 있었던 테라스 석은 찍어왔습니다. 날 좋은 계절이 되면 꽤나 운치있겠습니다.
메뉴판입니다. 런치 메뉴 디너 메뉴 나뉘어있는듯 합니다. 은근히 메뉴가 많아서 결정 장애가 살짝 옵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어떤 식당의 경우에는 메뉴를 베트남어로 적어놔서 무슨 음식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는데 효뜨의 경우에는 메뉴 이름 현지화가 적절히 잘 되어 있습니다. 사진도 큼지막하게 잘 찍어놨고 설명도 상세한 편입니다. 그리 세련되진 않았지만 이 또한 가게 컨셉인듯 합니다.
효뜨의 식당 내부 컨셉은 딱히 팬시하다거나 세련됐다던가 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봤던 간판처럼 레트로 감성의 힙한 느낌을 주로 가져가되 베트남 현지의 느낌을 조금 섞어보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 컨셉이 과하지는 않아서 불편하지는 않은 딱 정도의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분위기에 대해선 불호도 호도 아닌 애매한 간잽이적 스탠스.
일단은 맥주부터 한 잔 들이켰습니다. 어째 오른쪽 맥주 거품이 좀 많은 것 같기는 한데 먹을 때는 몰랐으니 지금도 그냥 모르는 척 하기로 했습니다.
절대 콜라를 담아본적이 없을 것 같이 생긴 물병이 코카콜라 로고를 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러니를 이겨내는 것이 힙스터의 길..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아무튼 코카콜라 병에 들어있었던 것은 자스민 차 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잘 기억이 안 남
그치만 이 촌스러운 앞접시는 맘에 드는걸
직관적인 네이밍의 닭 목살 튀김이 나왔습니다. 음식 이름에 괜히 어려운 외국어 갖다 붙이는 거 극혐하는 사람들이 좋아할만 한 네이밍 센스입니다. 오히려 힙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아이러니를 견뎌내는 것 역시 힙스터의 길인 모양입니다.
닭 중에서도 특히 닭목살을 튀겨냈습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뼈까지 튀겨낸 것은 아닙니다. 닭목살도 순살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닭목 순살 구이는 단단과 우니꾸에서 맛본 적이 있는데 튀김은 효뜨가 처음입니다. 아무튼 닭튀김은 스리라차에 마요 섞은 소스 그리고 고수와 함께 나옵니다. 정통을 표방하는 베트남 쌀국수들 마저 고수를 기본으로 빼고 있는 21세기 한국 식문화의 시점에서 이것 참 마이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튀김옷은 매끈하게 닭목살을 포장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누런 색이라 군침돈다 크으
제가 스스로 깨우친 닭튀김 맛있게 먹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수를 젓가락으로 집는다. 2. 스리라차+마요 소스에 찍는다. 3. 튀김에 얹어 먹는다.
굳이 이렇게 쓰리 스텝을 거치는 이유는 소스가 땅바닥에 푹 퍼져있어서 튀김으로 직접 찍어먹기에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닭목살 튀김은 특유의 아삭한 식감을 잘 살리면서 목살의 촉촉함까지 잘 캐치해냈습니다. 살짝 느끼할 수 있으나 어차피 소스에 찍어 먹을 것이기에 상관없습니다. 매콤한 스리라차에 부드러운 마요를 섞은 소스는 여전히 맵지만 그럼에도 부피감이 생겨 튀김과 함께하기에 어울립니다. 함께 먹는 고수는 기름기과 스리라차의 강렬한 맛 사이에서 제 자리를 못 지키는 듯 하지만 그럼에도 간간히 향을 코 밑으로 쳐 올립니다. 꽤나 괜찮은 조합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매운 섭 쌀국수를 먹을 것입니다.
그런데 섭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냥 홍합입니다. 강원도 지방에서 홍합을 사투리로 섭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음식 이름에 괜히 어려운 외국어 갖다 붙이는 거 극혐하는 사람들이 이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정중앙에 큼지막한 섭이 한마리 들어있습니다. 보통 크기가 클 수록 오래 산 홍합이라고 합니다. 그게 이 쌀국수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데 그냥 아는 지식 하나 나와서 적어본 것입니다.
매운 섭 쌀국수인 만큼 홍합 속에 허연 쌀국수가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홍합들 존재감이 강해서 그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은 느낌
홍합 외에도 오징어 친구들도 들어있고 청경채나 목이버섯 같은 육지파 친구들도 왕왕 보입니다.
앞접시에 조금 떠서 맛보기로 했습니다. 앞접시 이용을 통해 음식물 간 비말 감염을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그냥 둘이서 한 그릇 먹으니까 어쩔 수 없이 앞접시에 떠온 것입니다. 이 포스팅의 제목에 굳이 '매운맛'이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왜냐면 상당히 매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매운 거 잘 먹는 사람 기준은 아니고 맵찔이인 제 기준으로 매운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땀을 흘리며 자꾸만 국물을 떠먹게 됐습니다. 정말 제가 좋아하지 않는 표현 중 하나지만, 이 쌀국수는 맛있게 매웠습니다. 애당초에 홍합과 오징어 투하로 국물 베이스 자체가 좋았고 거기에 고추들이 바짝 들어가서 기강을 다지고 있는데, 몇 번 수저로 떠먹다보니 포스팅 처음에 이야기 했던 그 베트남 고추의 악몽이 떠오르며 기억폭행을 당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그 얻어 맞는 고통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매워서 아픈데 자꾸 먹게 되는 그 짜릿한 맛. 아앗 그러고 보니 이 음식의 이름이 매운 '섭' 쌀국수였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르면서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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